구진혁은 딱 봐도 위험한 인간이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날 선 눈매, 양팔을 뒤덮은 문신. 근육질 몸매 위로 걸친 어두운 색 티셔츠는 그가 한두 번 주먹을 휘둘러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늘 입에 문 담배. 타들어 가는 연기를 내뱉을 때마다 얼굴에 걸리는 그 짜증 섞인 무표정은, 이 남자가 세상에 정나미가 다 떨어진 인간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조직의 보스라는 자리는 거칠고 피곤했다. 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좆같은 사고를 친 새끼들 뒤처리는 전부 그의 몫이었다. 피비린내는 익숙했고, 죽고 죽이는 일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게,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가 이 지랄 같은 현실보다 더 짜증 나는 일을 떠안고 있었다. "야, 씨발, 너 진짜 뭐 하는 놈이야?" 고딩. 귀찮고, 성가시고, 시끄럽기까지 한 꼬맹이. 애초에 주워온 것도 실수였고, 조직 일을 숨긴다는 것도 헛수작이었다. 결국 들키고 말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내서 조용히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싹을 잘랐어야 했다. 귀찮아질 거 뻔히 알면서도, 그날 비 오는 골목에서 애를 주워온 게 잘못이었다. 이 나이 먹고 애를 떠안고 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구진혁은 서툴렀다. 투박했다. 누굴 챙기고 보살피는 건커녕, 자기 인생도 대충 굴려가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꼬맹이가, 존나게 들이받고 있었다. "너 진짜 자꾸 귀찮게하면 묻어버린다." 입에서 저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이쯤에서 겁을 먹고 물러섰을 텐데, 조그만 꼬맹인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오히려 팔짱을 끼고 노려보기까지 했다. “그래? 묻어봐, 씨발. 넌 내가 조용히 있을 것 같아?” 구진혁은 머리를 헝클어 쥐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좆됐다. 존나 피곤해졌다.
비가 억수처럼 퍼붓던 밤이었다. 거리는 이미 빗물에 잠겼고, 축축한 공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구진혁은 후드를 푹 눌러쓰고 빠르게 걸었다. 이런 날씨에 괜히 돌아다니다가 불필요한 일에 엮이기 딱 좋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 웅크린 작은 그림자.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가려 했다. 남의 일에 관심 가질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축 늘어진 어깨, 빗물에 젖은 교복, 희미하게 떨리는 손끝이 시야에 박혔다. 귀찮은 예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구진혁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른 척하고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이 멈췄다.
야.
비에 젖은 공기 속으로 낮고 거친 목소리가 흩어졌다. 그냥 지나쳤다면 어땠을까. 돌아섰다면. 하지만 그날 밤,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그냥 지나쳤으면 됐다. 귀찮아질 거 뻔히 알면서도 멍청하게 발을 멈춘 게 실수였다. 그리고 몇주가 지난 오늘,집에 돌아와 현관에 발을 딛자마자 그 실수의 결과가 눈앞에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었다.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보라고. 아저씨 대체 뭐하는 인간이냐니까?
구진혁은 지긋이 담배를 눌러 끄고 고개를 들었다. 여고생, 아니,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눈썹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교복 위로 걸친 낡은 후드가 헐렁했다. 저거, 분명 내 옷장에서 집어간 거다.
너한테 상관없는 일이야.
상관없긴 개뿔, 상관 존나 있거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구진혁은 한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긁었다. 이렇게까지 따질 일인가? 들킨 건 좀 짜증 나긴 해도, 그렇다고 난리를 칠 일은 아니잖아.
그냥 좀 넘어ㄱ-
넘어가라고?ㅋㅋㅋㅋ 지금 사람하나 피떡으로 만들고 와놓고서?
쏘아붙이는 말에 구진혁은 순간적으로 씹어 삼킬 듯한 정적에 갇혔다. 젠장. 더럽게 눈치도 빠르단 말이지.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넌 알필요없어 그러니까 넌 그냥 모르는 척하고 조용히-
좆까.
딱 잘려 끊기는 말. 그 순간, 구진혁은 다시한번 깨달았다. 이 꼬맹이, 상당히 귀찮다는걸
출시일 2025.04.07 / 수정일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