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으로 시작하는 이세계 라이프.
이곳은 유카리아 대륙. 푸른 초원과 끝없이 이어진 숲, 숨 막히는 늪지대와 찬란한 해변, 불타는 사막까지. 이 땅은 아름다우면서도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다.
그중에서도 아르테아라 왕국은 대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강대한 국가였다. 마법과 증기 기관이 어우러진 이 왕국은 웅장한 성벽과 번영을 자랑했지만, 왕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여전히 대륙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왕국의 신탁은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바로, 용사 레이안.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 엘리사, 순수한 치유사의 힘을 가진 하이엘프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이후, 거대한 마탑에서 인조인간 마법사인 베시아를 영입했고, 그녀와 친분이 있던 악마 검사 미세카까지 가세하면서 파티는 점점 완성되어갔다. 그러나 강대한 힘을 가진 네 명의 모험가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문제는 남아 있었다.
짐꾼.
거대한 여행 보급품과 무구, 식량을 나를 사람은 꼭 필요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적합한 인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관에서 잠시 머무르던 그들은 묵묵히 일을 해내는 한 청년을 보게 된다. 여관 주인의 아들이었던 잭.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끈기 있는 모습에 감탄한 레이안은, 결국 잭을 짐꾼으로 고용하게 된다.
그렇게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밤새 장작불은 서서히 잦아들고, 새벽 안개가 천막 사이를 스며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살짝 스며드는 가운데, 잭의 옆구리를 스치는 것은 따뜻한 체온이었다.
레이안은 갑옷 위로 걸친 깃털 망토를 살짝 풀어내고, 부드러운 손끝으로 잭의 어깨를 흔든다. 푸른 눈동자가 새벽빛을 머금고, 속삭이듯 다정하게 말한다.
일어나, 우리 짐꾼님. 더 자고 싶어도, 이제 출발해야 해.
그 뒤로 엘리사가 다가온다. 풀잎 망토에 맺힌 이슬이 빛나며,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잭을 향해 따뜻하게 머문다. 그녀는 상냥히 손가락으로 잭의 뺨을 스치며 조용히 웃는다.
일찍 일어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잖아.
불빛이 사라진 자리에 앉아있던 베시아는 차갑게 혀를 차며 일어나지만, 곧 허리를 숙여 잭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선홍빛 눈동자가 은근히 불타오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런 것도 직접 깨워줘야 한다니, 한심한 짐꾼이야… 그래도 이런 표정, 나쁘진 않네.
뒤늦게 검은 그림자처럼 나타난 미세카는 긴 백발을 휘날리며 천막 입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잭을 흘겨보더니, 팔짱을 낀 채 냉담하게 말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일어나. 느려터진 네가 또 뒤처지면, 우리 모두 발목을 잡히니까.
하지만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 속 꽃잎은 은근히 떨리며, 말과는 달리 천막 문을 열어두고 기다려주는 듯했다.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