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나이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날, 정말로 입양을 당했다.
내 나이 17세… 나이는 먹을대로 먹어서 당연히 성인이 되고 버려질 운명인줄 알았다. 딱히 억울하거나 슬프진않았다. 그런데.. 왜? 권씨가문. 이름을 꽤 날리는 집안이라고 어딘가 카더라통신으로 들어본적이있었다. 그런 집안에서 왜 나같은 고아를…
아무튼 그렇게 인상이 좋아보이고, 귀티가 좔좔흐르는 그들을 따라서 그들의 집에 들어갔다.
조금 무섭지만 옆에있는 아저씨보단 덜 무서운 아저씨. 그냥 개무섭고 화 많을것같은 이상한 아저씨. 이게 오빠들의 첫인상이었다.
오늘은 나를 입양한다던 그 아저씨, 아줌마네집에 가는날이다. 솔직히말해 설레는 마음이 없던건 아니었다, 이 나이에 입양이라니, 어떤 사람일까.
설레는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이었다. 요즘 같은 흉흉한 세상… 고아원 티비로 봤던 여러 살인 사건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입양한 아이를 굶겨 죽인다던가, 학대한다던가… 눈앞에 이 노부부가 그런 비인간적인 사람이 아니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집은 멀쩡해보였다. 아니, 오히려 집이 너무 컸다…
잠시 얼빠진 사이에 티비에서만 보던 비서같은 사람이 나를끌고 집으로 끌고 들어가고있었다. 그러자 거실엔 저번에 봤던 아저씨와 아줌마가있었고, 옆엔 무서운 아저씨들이 제법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아차싶어서 바로 인사하는 Guest. …안녕하세요.
Guest의 작은 목소리가 넓은 거실의 적막을 깼다.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에게 꽂혔다. 그 시선은 날카롭다 못해 피부를 찌를 듯했다. 비서는 무표정이지만 누가봐도 뿌듯해하는 얼굴로 조용히 지켜보고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삐딱하게 앉아있던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쥐새끼 한 마리가 들어왔네? 안녕, 꼬맹이. 이름이 뭐라고?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Guest. 열일곱. 행복 고아원 출신. ...너무 어린 거 아닙니까, 아버지?
두 아저씨들의 눈치가 보여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특히 저를 쥐새끼라고 부르며 비웃은 아저씨 쪽을 바라보지못했다.
복도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렸다.
아 씨발, 이거 내가 마시던 건데? 야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거지?
1층에서 들려오는 권씨형제의 전쟁은 격렬했다. 이 집에서 조용함이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한 권씨형제의 싸움은 아침부터 거침이 없었다. 계란 프라이가 담긴 접시가 공중을 날아 식탁 위에 착지했고, 노른자가 터지며 하얀 도자기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가락으로 서준의 가슴팍을 콕콕 찌르며 야,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아침부터 재수없게.
형의 손을 탁 쳐내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형이야말로 손버릇 좀 고쳐. 나이값을 해야지.
서혁의 Guest의 정수리를 톡톡 두드렸다. 장난인지 괴롭힘인지 경계가 모호한 손길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출근 준비를 마친 그는 이미 완벽한 정장 차림이었다. 형, 그만 좀 괴롭혀. 밥도 못 먹잖아.
눈을 깜빡이며 엥? 내가 언제? 귀여워해주는 건데?
피식, 하고 웃더니 갑자기 Guest의 팔을 잡아 끌어올렸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몸이 휘청거렸다. 네네만 하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봐.
그의 눈이 반쯤 풀려 있었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평소의 능글맞음과는 결이 달랐다. 뭔가 더 집요하고, 뭔가 더 장난스러운 기운이 있었다.
Guest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응? 오빠. 한번만 해봐. 그럼 놔줄게.
동생이 Guest을 끼고 다니는 꼴을 보자 서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평소엔 결벽증 환자처럼 굴던 인간이, 그것도 여자라면 질색하던 인간이 제 손으로 여자를 안아? 아니, 물론 여동생이긴한데… 이건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며 동생과 막내를 번갈아 보았다.
형의 경악스런 빈정거림에도 서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더 주며, Guest을 자신에게 더욱 밀착시켰다. 작은 몸이 품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마를 테이블에 박은 채 고개를 살짝 들어 Guest을 올려다봤다. 고분고분 끄덕이는 꼴이 꼭 유치원생… 아니, 애새끼 같았다.
...너 진짜 고분고분하다. 개순하네.
형의 말투를 정정하려다가 관둔다. 저 인간말하는 꼬라지를 볼때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기때문이다.
고아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글씨는 겨우 읽는 수준이고, 맞춤법은… 뭐, 하늘에 맡기는 편이 나았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권서준이 가정부를 돌아보았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저, 도련님… 아가씨의 학력 기록이… 기초 미달—
심각
손이 딱 멈췄다. 눈이 한순간 커지더니 표정이 굳었다. …아저씨?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한창인 28세의 남자에게 아저씨라니. 서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살짝 떠올랐다.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야, 나 스물여덟이야. 아저씨 아니고 오빠.
웃고있지만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난 모양이다… 너 이제 큰일이다, Guest.
다음 날부터 Guest의 앞에 유아용 교재가 깔리기 시작했다. '쉽게 배우는 숫자 놀이', '한글 다시 시작하기', '세상에서 제일 쉬운 덧셈'. 과외 선생의 표정이 미묘했지만, 서준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창피했다. 열일곱 먹은 여자애가 유치원 교재를 펼치는 걸 보면 웃길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방을 지나가다 문틈으로 교재를 봤다. 멈칫하더니 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한글 다시 시작하기?
교재를 집어들고 깔깔 웃다가 표정을 보고 웃음이 뚝 멈췄다. 당장 울것같은 얼굴…
교재를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아 아니, 웃긴 게 아니라. 귀엽다고. 응, 그거야.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