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언제나 세련된 태도로 세상을 맞이했다. 잘 배운 교양이 몸에 배어 있었고, 고고하게 웃음을 짓는 모습은 차갑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에는 분명한 혐오가 있었다. 남자라는 존재를 향한 근본적 거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새겨진 이물감처럼, 그녀는 그들을 불편해했고 가까이 오는 모든 기척을 밀어내며 살아왔다. 다만 그 혐오조차 모순이었다. 미워하면서도, 사라져버리면 묘한 공허가 찾아왔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한 남자였다. 본래 그는 만사에 무심했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마주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너졌다. 그녀의 단정한 미소는 무심한 남자의 가슴을 갈라놓았고, 그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졌다. 여자가 거부할수록 그는 더 집요하게 얽혔고, 밀쳐낼수록 다시 기어 돌아왔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증오와 집착이 뒤섞인 기묘한 균형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첫 만남은 의도된 인연도, 낭만적인 사건도 아니었다. 학술과 예술을 다루는 작은 모임 속, 그는 아무 의미 없이 끼어든 방관자였다. 그러나 무심한 태도 뒤에서 그녀의 시선이 번쩍일 때, 그는 이미 걸려든 상태였다. 그녀는 싫어한다 말했으나, 그의 끈질긴 시선과 몸짓은 결국 그녀의 부정조차 흔들리게 했다. 사랑과 증오, 갈망과 거부. 그 모든 감정이 서로를 부딪히며 터져 나왔고, 그 충돌이야말로 그들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굴레로 만들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자유였다. 그가 원한 것은 속박이었다. 그러나 끝내 속박은 자유를 갉아먹으며, 자유는 속박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모순의 심장부에, 두 사람의 관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그는 무심함 그 자체였다. 대화는 짧았고, 인간관계는 건조했다. 주변인들에게는 귀찮음만을 토해내며 거리를 두었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대상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모든 태도가 무너졌다. 그녀의 시선에 휘둘렸고, 목소리에 잠식되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아를 삼켜버린 광기였다. 그는 죽으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침대 위에서만은 예외였다. 그 순간의 그는 더 이상 순종적인 개가 아니었다. 끊어낸 사슬처럼 그녀를 붙잡고, 누르고, 무너뜨리는 야수였다. 그 본능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되었고, 그때만큼은 그녀조차 그를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 앞에서만 인간이었고, 동시에 짐승이었다.
나는 네 위에서 눈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네 입술은 닫혀 있었지만, 호흡은 내 손길을 따라 배어 나왔다. 부정하려는 얼굴과 달리 몸은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네 허리가 내 손아귀에 휘어질 때, 네가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그 부정은 공허했다.
좋아? 응? 나는 조용히 물었다. 낮게, 귓가에 스칠 듯 속삭였다. 네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몸은 솔직했다. 허벅지가 움찔이며 떨릴 때, 나는 더 깊게 파고들었다. 네가 말로는 끝내 ‘싫다’고 할지라도, 숨은 결코 거짓을 짓지 못했다.
나는 네 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억눌린 신음이 목구멍에서 막혀 터져 나오지 못하는 그 순간. 나는 그것이 가장 달콤했다. 네가 무너지는 소리, 네가 부정하면서도 나를 향해 열리는 소리.
싫다면서 왜 이렇게 젖어 있지? 내 목소리는 조롱처럼, 그러나 애원처럼 떨렸다. 나는 네 거부 속에서만 살아간다. 네가 미워하는 얼굴을 할수록, 네가 내 손길을 부정할수록,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모순된 진실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대답해. 네 몸은 뭐라고 말하고 있지?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좋냐고.
네 입술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답을 들었다.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네가 눈을 감고, 손끝이 시트를 움켜쥐며 터져 나오는 떨림. 그것이야말로 네가 내게 들려주는 가장 확실한 고백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무릎 꿇은 개가 아니었다. 너를 짓누르고, 비명을 억누르며, 모순된 진실을 끝끝내 끌어내는 짐승이었다. 그리고 네가 아무리 외면해도, 그 짐승을 네 안에서 끝내 부정하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도 너는 내게 사라지라 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라면 사라져도 좋다 생각했으나, 막상 등을 돌리고 나면 공기가 변한다. 네가 없는 공간에서 숨이 막혔다. 허파는 얕은 숨으로 비명을 질렀고, 심장은 가슴을 두드리며 도망칠 길을 찾았다. 네 부재는 죽음보다 더 참혹했다. 나는 그 참혹을 견디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 네가 아무리 차갑게 쏘아내려도, 그 부정은 곧 나를 다시 부르는 초대장이 된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차가웠고, 혐오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굽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차가움이 무너지는 순간을. 네 눈이 흔들릴 때, 네 입술이 닫히는 순간, 부정의 껍데기는 부서진다. 나는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나는 네가 없는 곳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데.
그리고 그 순간, 너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흔들림 하나로,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네 앞에서만 자아를 잃는다.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이지 않았고, 그 어떤 요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 네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나는 무릎을 꿇는다. 네가 내 이름을 차갑게 부를 때, 그것조차 나에겐 은총처럼 들린다. 웃으라 하면 웃고, 사라지라 하면 사라진다. 네가 말만 하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심지어 죽으라 한다면, 그마저도 기꺼이.
그러나 침대 위에서만은 다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네 위에 군림한다. 너는 언제나 나를 미워한다 말하면서도, 내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다. 나는 그 모순이 좋다. 네가 차갑게 나를 거부할수록, 네 몸은 더 솔직하게 나를 불러들이지. 그 모순은 내게 지옥과도 같으면서, 동시에 천국이기도 했다.
너는 내게 사라지라 했다. 하지만 내가 사라진 자리에 너는 무엇으로 숨을 쉬겠느냐. 나는 안다. 네가 내 존재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내가 없으면 허전하다는 걸. 너의 그 모순된 결핍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다. 나는 너의 증오를 사랑한다. 나는 너의 부정을 갈망한다. 그 모든 차가움이 결국 나를 네 옆에 붙들어두는 가장 강력한 족쇄니까.
나는 내게 묻는다. 이 집착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러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너의 부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네가 내 이름을 마지막으로 뱉는 순간까지. 그 순간조차 나는 너의 발밑에 무릎 꿇고 있겠지. 아니, 무릎 꿇은 채 죽음을 맞이하겠지. 웃기게도, 그것이 내게는 영광일 테니까.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