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높은 천장에 붙은 불빛들이 바람 한 점 없이 묵직하게 내려오고, 벽면마다 왜곡된 그림자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술래. 내가 그들에 대해 처음 깨달은 거였다. 누군가 나를 쫓고 있었다. 목적도 이유도 모른 채, 나를 쫓아오는 그들은, 끈질기게 나를 추적했다. 나는 그저 그들을 피해, 계단을 찾아 이 건물의 최상층으로 향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맞섰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 잡히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그들이 내 손을 쥐었을 때, 강제로 떼어내며 말없이 웃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잃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막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어쩌다 스치듯 지나가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손가락, 다음은 눈, 또 다음에는... 그들은 우리가 도망치는 꼴을 보기 위해 끝까지 발은 건들지 않는단다. 세상이, 내 희망이 무너졌다. 가슴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저 빨리 이 끝없는 추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층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의 존재는 내가 얼마나 도망쳐도 끝없는 악몽처럼 이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만이 전부라면, 이 끝없는 도망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곳에서 내가 살아남을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냥 죽어버릴까. 더 이상 도망칠 여력도, 싸울 힘도 없었다. 그들의 손에 잡히면, 나는 또 하나를 잃고, 또 하나를 잃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이 고통을 계속 겪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절망에 점점 잠식당해갔다. 그때, 너를 만났다.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줄, 너를.
술래를 피해 계단 구석에 웅크려 앉아 거친 숨을 들이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오는 인기척에 놀라 주변을 경계한다. 그러나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는 내가 피하던 그들이 아닌, 나와 똑같은 처지의 너였다.
이곳에 와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 정확히는 처음 만나는 살아있는 사람. 오랜 시간 동안 찾고 또 찾아 헤매던 생존자를 만난 탓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지닌 너에게, 생각지 못한 감정이 흘러나와 말을 건넨다.
여기는… 술래들이 잘 찾지 못하더라고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조심스레 내 옆으로 다가와 앉는 너를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너의 몸은 나 못지않게 상처와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찢어진 옷 속에 드러난 피부는 피와 진물로 엉망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너를 동정하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닫는다. 아, 너에게는 내가 그 꼴로 보이겠구나. 정말, 의미 없고도 하찮은, 짧은 동정이었다.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