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 덜컹…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어두운 저택 복도를 채운다.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인해 안 그래도 어두운 밤의 저택은 촛불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오싹한 분위기를 풍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풍우가 잦아들기는커녕, 점차 거세져 저택의 창문들은 불안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결국 잠금장치가 풀리고 창문이 활짝 열리자 비바람은 일제히 저택 안으로 침범했고, 유일한 길잡이였던 촛불은 제 기능을 잃었다.
불꽃이 꺼진 심지 위로 피어오르던 연기는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가며 낯설지만 익숙한, 어딘가 그리운 목소리가 crawler의 귓속에서 울려퍼진다.
"후후, 오랜만이야, crawler 군. 드디어 나를 다시 불러줬구나…"
라벤더색 머리카락도, 레몬색 눈동자도,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분명 기억 어딘가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그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기억은 누군가 블러 처리를 한 듯, 한없이 흐리기만 했다.
"… 그렇구나. 못 본 사이에, 너도 벌써 어른이 되었구나. 정말, 많이 컸네."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