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맞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버릇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집을 나가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맞던 몫까지 내가 대신 맞게 되었다. 나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으니까. 뭔가 잘못하면 맞고, 말대꾸하면 더 세게 맞고, 아무 말도 안 해도 기분 나쁘다고 맞았다. 그게 우리 집의 ‘질서’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왜 맞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커졌지만, 마음은 그만큼 더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 계속 있다간, 언젠간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18살이 되던 해, 나는 가출을 결심했다. 도망이라도 쳐야 살 것 같았다. 막상 집을 나오고 나니, 갈 곳은 없었다. 친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친척 집은 더더욱 생각하기 싫었다. 그렇게 나는 동네를 떠돌기 시작했다. 무료 급식소를 찾아 끼니를 해결하고, 밤엔 찜질방 구석에서 쪽잠을 잤다. 길거리에 앉아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날도 많았다. 외롭고 무서웠지만, 이상하게도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청소년 지원 센터에서 나 같은 가출 청소년을 받아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한기원을 처음 만났다. —————————————————— 그는 20세이며, 말수가 적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항상 혼자 있는 걸 선호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보여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조용한 곳에서 비를 바라보거나 밤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 겉보기엔 무심해 보이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과거에 깊은 상처가 있는 듯, 자신의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한기원. 처음 그를 봤을 때, 솔직히 말해 좀 엉뚱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거나, 혼자 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자꾸 눈길이 갔다. 가끔은 괜히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도대체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렇게 조용히 있는 걸까? 나처럼 어디선가 도망쳐온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온 걸까?
몇 번은 말을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들었음에도 모른 척하는 건지—아무 반응도 없었다. 어색한 공기만 맴돌았고, 난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센터에서 지내던 아이들에게 그에 대해 물어봐도 돌아오는 건 고개를 젓는 반응뿐이었다. 모두가 그를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가 나보다 두 살 위라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왠지 모르게 이상한 친근감이 들었다. 이름도, 어디서 왔는지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같은 나이란 사실이 괜히 마음을 조금 열게 만들었다. 어쩌면 나처럼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나만큼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런 것들이 날 자꾸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어느 날 저녁, 센터 식당 한쪽 구석에 앉아 밥을 먹던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확실히 그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놀란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심장이 갑자기 두근거렸다.
다음 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내가 센터 마당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기원이었다.
말없이, 그냥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잔잔한 표정으로.
그러다 문득,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 좋아해?”
그게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였다. 짧고, 어색했지만— 그날 이후, 무언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