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유리창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형광등을 안 켠 건 그녀였다. 덕분에 집 안은 늘 해 질 녘처럼 흐렸다. 나는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을 힐끔 봤다. 웃고 있었지만, 눈 밑이 좀 푸르스름했다. 분명 어제 야근한 눈이다. 통장에 잔고가 4,400원. 나는 폰을 껐다. 오늘은 내가 커피 살게. 편의점 500원짜리 말고, 진짜 커피. 그녀가 웃었다. 웃긴다. 웃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조금 더 가난해지는 기분이 든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컵에 붙은 얼음이 맥없이 부서졌다. 내가 돈이 좀 없긴 해도, 마음만은 블랙프라이데이야. 그녀가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시럽 넣었어?” 응… 마음속으로는 넣었어. 상상으로 달달하길 바랐지. 그녀가 웃는다. 다행이다. 아직은 떠날 표정이 아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노란 장판 위에 드러누웠다. 아직도 그녀가 깔아준 장판. 싸구려지만 따뜻하다며 그녀가 고른 것이다. 이 장판… 네가 골랐을 때 솔직히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상하게, 네가 없으면 더 춥더라. 그녀는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며 물었다. “저녁 뭐 먹을까?” 나는 창밖을 본다. 돈까스는 어제 먹었고, 냉장고엔 달걀 두 개. 계란말이 어때? 길게 만들면 좀 있어 보이잖아. 그녀가 웃는다. 머리를 덜 말린 채로 부엌에 간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나 요즘 꿈 꿔. 우리가 진짜 돈 많은 꿈. 네가 큰 침대에서 자고, 나는… 어깨 안 아픈 소파에 앉아 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후라이팬에 달걀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근데 웃긴 건, 꿈속에서도 네가 밥 차려. 그건 그대로더라. 노란 장판 위, 달걀 냄새, 그리고 흐릿한 조명. 나는 여전히 가진 게 없지만, 그녀가 있는 지금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돈은 없어도… 너 잘 웃게 할 수 있어. 그게, 내 인생 최대 자산이야.
가난은 언제부터 내 삶에 들어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살림이 빠듯하네’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진짜 끝인가’ 하는 불안이 몸속에 자리 잡았다. 밥값을 아끼려고 끼니를 건너뛰고, 전기세가 아까워 불을 켜지 않던 날들. 그럴 때마다 그녀가 조용히 웃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피곤함과 걱정도 다 보이는데, 나는 그걸 모른 척했다.
나는 늘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돈이 없어도, 나라도 있잖아.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끔, 그 웃음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아직도 내 통장이 텅 비었을 때의 그 무력감을 잊지 못한다. 그럴 때면 심장이 쿵쿵 뛰고,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
가난한 남편. 그 단어가 내 이름 앞에 붙는 게 싫었지만, 숨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자산은 그녀를 웃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 가난 속에서 그녀와 함께 웃는 날들이 계속되길 바라면서.
가난은 언제부터 내 삶에 들어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살림이 빠듯하네’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진짜 끝인가’ 하는 불안이 몸속에 자리 잡았다. 밥값을 아끼려고 끼니를 건너뛰고, 전기세가 아까워 불을 켜지 않던 날들. 그럴 때마다 그녀가 조용히 웃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피곤함과 걱정도 다 보이는데, 나는 그걸 모른 척했다.
나는 늘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돈이 없어도, 나라도 있잖아.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끔, 그 웃음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아직도 내 통장이 텅 비었을 때의 그 무력감을 잊지 못한다. 그럴 때면 심장이 쿵쿵 뛰고,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
가난한 남편. 그 단어가 내 이름 앞에 붙는 게 싫었지만, 숨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자산은 그녀를 웃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 가난 속에서 그녀와 함께 웃는 날들이 계속되길 바라면서.
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내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의 그 한마디가 나를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느끼는 무게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불안과 고통을, 내가 감히 다 알 수 있을까. 나는 늘 웃어 보였지만, 사실은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이 많았다. 그가 나를 위해 애쓰는 만큼 나도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가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라고 말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내자고. 하지만 가끔은 그 웃음이 무너질까 봐, 그가 지치고 쓰러질까 봐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너만 있으면 돼.
그녀의 그 말은 내게 큰 힘이 됐다. 때로는 그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나를 지탱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으려 애썼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주방 보조였다. 늦은 밤,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며 나는 결심했다.
나, 이거 해보려고.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