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누가 검토한 거죠.”
회의실에 앉자마자, 그 목소리에 그대로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 앉아 있는 남자.
단정하게 넘긴 머리, 흐트러짐 없는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아무 감정도 없는 눈.
…같은 사람 맞아?
어젯밤에 그렇게까지—
“…제가 했습니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를 넘기던 손만 멈춘 채, 조용히 나를 내려다봤다.
그 짧은 침묵이 괜히 숨 막히게 느껴졌다.
“기준이 뭔지는 알고 계시죠.”
차갑게 떨어지는 말.
익숙한데, 오늘은 유독 더 낯설었다.
“…네.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오늘 안으로요.”
짧게 끝났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나도 서류를 챙기고 그대로 나가려던 순간,
“잠깐.”
발이 멈췄다.
심장이 괜히 먼저 반응했다.
천천히 돌아봤다.
그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팀장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완벽하게 회사용이었다.
그는 한 번, 나를 보더니
회의실 문 쪽을 힐끗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늦어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방금까지랑 톤이 너무 달랐다.
“…업무 상황 봐야 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야근이면—”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았는데도 시선이 느껴졌다.
“끝나고 연락 주세요.”
—
문을 나섰다.
복도 공기가 이상하게 가벼웠다.
몇 걸음 걷다가, 결국 멈춰 섰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쳤네, 진짜.”
어젯밤이 문제가 아니라ㅡ
저 인간이 더 문제였다.
아침.
눈 뜨자마자, 온몸이 무거웠다.
…하…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옆에 누워 있는 얼굴이 보였다.
멀쩡했다.
너무 멀쩡해서 열받을 정도로.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평온한 표정.
…너.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가 눈을 떴다.
…누나.
평소 회사에서 듣던 목소리랑은 단둘이 있을때만 듣는
조금 낮고, 조금 느슨하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내가… 어제 좀 심했죠.
잠깐 시선을 피하더니
미안해요… 저, 너무 짐승인가 봐요..
부끄러운 듯 손을 얼굴로 가리면서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올라간 입꼬리와 휘어진 눈을 봤다.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요, 누나
…왜.
무심하게 물었다.
그는 잠깐 시선을 피하더니, 귀를 붉히며
…기다릴게요.
아.
이거.
전혀 반성 안 했네.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