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깡패의 적은 검사라고 했던가. 어찌 보면 가장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족보다 자주 보는 사이가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길게 늘어진 긴 웨이브 머리에 매일 정갈하게 세미 정장을 입고 피비린내 가득한 사무실을 들낙거리는 그 검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이 일을 쪽팔리다 느끼게 한 장본인. BN 캐피탈. 겉으론 성공한 기업 정도로 보이는 이곳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일을 치를 땐 범법은 기본, 순 악질이란 악질의 짓은 서슴치 않는 거대한 살인청부업체와 비슷했다. 그곳의 대표이자 킬러인 최제현은 저에게 깡패라 칭하는 자들에게 더욱 예민했다. 엄연히 다르니까. 깡패의 깡자라도 나오면 으르렁거리며 칼을 들이대던 그가 그 검사 앞에서만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굴었다. 목덜미 끝까지 셔츠 단추를 꼭꼭 잠구고서 삐딱하게 구는 꼴이 짜증나기도, 새롭기도 했으니. 다른 범법자 하나 상대하다 얼굴에 생채기 하나 달고 온 날에는 하도 지랄지랄을 하는 탓에 피곤한 건 디폴트값으로. 어떻게 교도소든 구치소든 손을 뻗치는지 그 범법자가 제대로 출소하는 일은 죽어도 없었다. 입꼬리를 싹 올려 그 검사 머리칼을 살살 꼬아 넘겨주는 건 고치기 힘든 습관으로 들어찼고, 한참을 튕기다 이제야 마음을 조금 내어준 그 검사에게 하고 싶은 짓거리가 너무 많지만 참고 참는 건 아직도 존나게 힘들고. 말 한 번 거칠고 상스럽게 하는 탓에 검사 눈살 찌푸리게 하는 건 고치기 싫은 악취미이고. 그 개같은 선을 본다고 한껏 꾸며 앞에 떡하니 나타난 얼굴 울상 짓게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그 남자를 반 죽여놓든, 그 검사를 반 울리면 되니까. 죽이는 방법도, 울리는 방법도 여러가지라 하나 꼽기는 힘들고. 그렇게 차려입고 선 본다는 말을 꺼내며 내 앞에 빤히 나타난 이유가 뻔하잖아. 방해해달라는 거 아냐? 존나 재미없는 법조인이든 의사든 나서 뭐해. 우리 검사님 그런 거 싫어하잖아. 못생긴 거 보면 토하잖아.
온갖 난잡한 일은 다 해본 게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이라 내놓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입에 거친 말 상스러운 말 달고 살지만 로맨틱한 말 한 번씩 내미는 건 서비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어 하나를 꺼내 문다. 딸깍거리는 라니터 소리를 한참이나 내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그대로 얼굴에 내뱉는다. 무슨 의미인 줄 알아요? 네 얼굴이 뿌연 담배 연기로 잠시 안 보였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며칠 전에 선이라고 지랄맞은 짓거리를 한 것도 빡쳐 죽겠는데. 이제와서 뭐? 압수 수색? 이렇게 순진해서야, 모르겠죠. 검사님은? 꼿꼿이 서서 압수 수색 영장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뭘 할 수 있다고. 어차피 당신도 날 사랑하잖아. 아닌가? 응?
첫날밤은 미치도록 기억에 오래 남았다. 새벽 내내 붙어먹었더니 다음 날 아침에 네 몸에 꼭 붙어 살살 옷 속에 손을 넣어 부드러운 맨 살을 쓰다듬었더니만 꿍얼거리며 두 시간밖에 못 잤다고 출근까지 미룬다는 말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내 등짝에 네가 갈겨둔 손톱 자국은 보이지도 않나, 목덜미에 조금 남긴 울혈이 그렇게 신경 쓰인다고 또 지랄지랄. 그땐 귀여웠는데. 그것도.
할 수 있으면 해봐요. 나 감빵가면 검사님 살맛도 안 날텐데.
BN 캐피탈은 건드리기 어려운 기업인 걸 모를 리 없던 부장이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압수 수색을 내렸다. 검사장도 안다던데. 굳이? 지는 게임은 죽어도 싫었던 나는 아등바등 여긴 관두자며 빌었지만 부장은 꽤 단호했다. 그런 내 앞에 서서 담배 연기나 내뿜는 너는...... 내가 모르긴 뭘 몰라. 이 상황에서도 넌 그런 생각이나 하니. 내 말에 피식 웃으며 검사님이 좀만 달아야지. 존나 달잖아. 이딴 말이나 지껄이는 그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누군 너 감빵 보내고 싶어? 네가 윗선에다 말 좀 잘 하던가. 뭘 또 밉보였길래 BN 쓰러뜨리고 싶어서 안달들이신지.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