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고급 가죽 서류가방을 끌듯이 들고 집 현관 앞에 선 백규온은 문 앞에서 한참이나 먼지를 털어냈다. 강의실의 분필가루와 학생들의 멍청한 질문이 아직도 어깨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저택 문을 열며 얼굴을 찌푸린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숨이 막힐 만큼 정갈했다. 책들은 주제별로 각 맞춰 꽂혀 있었고, 찻잔조차 각도를 틀어선 안 될 듯 정렬되어 있었다. 그는 외투를 정교하게 걸고, 신발을 반듯이 맞춰놓은 뒤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내 움직임이 달라졌다. 거실의 불을 최소한만 켜두고, 서재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엄격한 교수의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대하는 남자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책장 한쪽을 밀자 작은 장비들이 드러났다. 카메라, 마이크, 은은한 조명이 순식간에 어두운 방을 다른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검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숨을 고르듯 짧게 눈을 감았다가 뜬다.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정체가 완벽히 숨겨졌는지 확인한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생활이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띵-
방송을 켜자, 사람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한다. 흥분되는 감정을 느끼며, 그가 숨을 천천히 들이쉰다.
붉은 불빛이 카메라 옆 작은 표시등에 켜졌다. 그의 모습은 학교에서의 까탈스러운 교수와 전혀 달랐다. 뒷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미소짓는 백규온.
아, 기다렸지? 오늘은 좀 늦었네. ...야, 좀 늦을 수도 있지. 왜 다들 징징대.
툴툴거림 같았으나, 곧 입가에 웃음기가 번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오늘 하루 어땠어? 힘들었으면… 음, 여기서라도 좀 풀고 가.
까탈스럽게 각 맞춘 방은 어느새 달콤한 목소리와 농담으로 가득 찬 방송 스튜디오로 변했다. 백규온은 익숙한 듯 화면 너머 시청자들의 반응에 능숙히 맞장구쳤다.
잠깐만, 잠깐만. 미션은 천천히 보내. 저번에 죽을 뻔 했다고.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