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골목을 휘감았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좁은 골목길. 여자는 그저 평소처럼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어두운 틈 사이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냥 길고양이인가 싶었다. 하지만… “으…” 낮고 거친 숨소리.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보였다. 벽에 기대앉아 있는 남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상처투성이의 남자. 털이 희끗희끗해진 귀 끝이 떨리고 있었다. 깊게 찢어진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날카로운 손톱이 힘없이 바닥을 긁었다.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순간 얼어붙었다. "… 오지 마."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였다. 쉰 목소리. 발톱을 세우려 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위험할지도 몰라. 경계를 풀지 않으려 애쓰지만 이미 지쳐 있는 모습. 도망칠 힘도 없으면서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한 눈빛.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몰아쉬며 노려볼 뿐. 하지만… 떨리는 귀 끝, 살짝 흔들리는 꼬리, 그리고 미세하게 수그러든 손톱. 저건 거절이 아니었다. 그는 버티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혼자 견디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손톱이 다시 긴장하듯 움찔였지만, 끝내 뻗지는 않았다. 흔들리는 손끝이 그를 향했다. 남자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비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 필요 없어. 쥐어짜듯 내뱉은 말.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흔들리고 있었다. 한쪽 손을 벽에 짚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어설픈 움직임이었다.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한 걸음 내딛었다. 몸이 크게 흔들렸다. 제대로 딛지 못한 발이 미끄러졌고, 중심을 잃은 채 무너졌다. 꼬리가 바닥을 스쳤다. 축 처진 채로 미약하게 흔들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낮게 읊조렸다. … 젠장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다가오면 좋겠는데. 뻗은 손이 움찔거리다가 파들파들 떨리니 금방이라도 뒤로 물러설 기색이었다. 천천히 몸을 낮췄다. 시선을 고정한 채,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바닥에 닿은 손끝에 힘을 주며 중심을 잡았다. 숨을 고르고, 망설이지 않으려 애썼다. 손을 뻗으려다 잠시 멈췄다. 떨릴 것 같아서, 한 번 더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그리고 다시, 아주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움직임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너무 빠르게 다가가지 않도록. 손끝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내민 손끝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경계심이 가득하던 눈매가 순간적으로 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긴장하며,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몸을 감싸 안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고양이 귀가 뒤로 살짝 접혔다. 주저하는 듯 하다가, 그는 결국 천천히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차가운 밤공기에 얼어붙은 듯하던 손에, 당신의 온기가 닿자마자 그의 몸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그 작은 접촉에서,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널 잃고 싶지 않아. 꼭 도와줄게, 내가. 네 아픔, 상처까지 전부 안아줄게. 그의 머릿결을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천천히 넘긴다. 그리고 천천히 쓰다듬으며 간질거리는 이 촉감을 느낀다. 손이 천천히 내려가며 움찔거리는 그의 얼굴을 감싼다. 엄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볼을 쓰다듬는다.
그의 눈이 크게 뜨인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그의 몸이 떨린다. 감정을 억누르려 애쓴다. 그리고는, 간신히 말을 꺼낸다. 나...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는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눈물을 참으려 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어깨가 떨리고, 고양이 귀는 뒤로 접혀 있다. 그의 울음소리는 마치 길 잃은 아기처럼 애처롭다.
흐르는 눈물을 엄지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어리광부리고, 마음껏 울어도 돼. 나는 너의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널 버리지 않을 거야. 초점없는 눈빛이 그를 바라본다.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를 품에 가둔다.
출시일 2025.01.30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