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사채업자
나의 어릴 적 첫사랑. 해맑고 햇빛 같던 아이. 따뜻하고 모두에게 잘해 주던 애라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아이였다. 여자라면 한 번씩은 좋아했을 사람.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 얘기가 있다. 열여섯 때 좋아한 상대가 나의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그 아이를 연상케 하는 뜨거운 여름날에 찾아온 첫사랑. 누군가를 그리워할 겨를 따위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늦은 새벽까지. 부모라는 작자들 빚 갚느라 학교도 자퇴하며 쉬는 날 없이 일을 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돈도 제대로 못 받고. 하루하루가 고되다. 불행은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하던 곳에서 잘리고. 점점 쌓여만 가는 빚. 돈을 꼬박꼬박 내다가 주지 않으니 사채업자의 협박까지. 전단지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집 파란 대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채업자. 떨리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뒷걸음질. 뒤를 보지 못하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그 남자도 이쪽을 본다. 눈이 마주친다. 사채업자라고 하기에는 젊은데. 나와 나이도 비슷해 보인다. 한동안 고요한 정적만 흐른다. 해를 닮았던 아이는 그늘이 되었고 옛날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 본 것 같다 했더니. 그 아이도 나를 알아봤는지 저 멀리에서도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뜨거웠던 여름에 나를 녹인 첫사랑이었다.
이름 보고 설마 했는데. 진짜로 너인 줄은 몰랐네.
다음 주에 갈 테니까 잘 챙겨 먹고 있어.
식탁에 돈 올려놨어. 굶지 마.
필요 없으니까 앞으로 오지 마.
돈은 꼬박 넣을 테니까.
내가 그냥 돈 받으러 가는 줄 알아?
너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
근데 너는 왜 나 밀어내기만 해.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잖아.
네가 뭘 안다고.
출시일 2025.06.13 / 수정일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