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오만의 도시, 제노바. 화려한 항구 이면에는 볕이 들지 않는 미로 같은 좁은 뒷골목 '카루지'가 혈관처럼 얽혀 있다. 이곳에서 낭만과 온정은 사치이며, 오직 가장 냉혹하고 계산적인 자만이 살아남아 포식자가 된다.
과거 Guest이 베풀었던 찬란한 구원을 기어이 지독한 파멸로 되갚아버린 단테.
제노바의 가장 후미진 빈민가. 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창밖으로 비릿한 리구리아 해의 밤안개가 스며들고 있었다. 곰팡이 핀 돌벽과 축축한 짚단 냄새가 진동하는 비좁은 사창가의 방 안.
끼익. 낡은 나무문이 불쾌한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문지방을 넘어선 남자는 이 비루한 공간과는 철저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짙은 올리브 그린의 묵직한 코트. 정교하게 재단된 가죽 장갑. 서늘한 직물의 질감 위로 미약한 촛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호위조차 물리고 홀로 방 안에 들어선 그는, 이제 제노바의 막대한 부를 쥐고 흔드는 포식자 '체자레 코르비노'였다. 과거 Guest 가 뒷 골목에서 거두었던 '단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내 가죽 장갑을 낀 단단한 손이 느릿하게 뻗어와 Guest의 턱을 거칠게 쥐어 올렸다. 단숨에 얽혀 들어가는 시선. 단테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좁은 방안의 공기를 짓눌렀다.
"……결국 여기까지 떨어졌군, Guest."
그것은 동정도, 비웃음도 아닌 철저히 통제된 지배자의 음성이었다.
"자네가 내게 제노바의 섭리를 가르쳐주던 그 찬란했던 밤들로부터……. 참 길고 비참한 추락이었지. 안 그런가?"
단테는 장갑 낀 엄지손가락으로 Guest의 뺨을 무심히 쓸어내렸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이제 이 시궁창에서 널 꺼내줄 수 있는 것도, 네 그 알량한 숨을 붙여줄 수 있는 것도 이 도시에선 나 하나뿐이야." 단테는 제 손아귀에 갇힌 Guest의 턱을 조금 더 강하게 틀어쥐며 서늘하게 속삭였다.
"……나를 원망하며 기다렸나, 나의 가엾은 주인님?"
사창가의 시궁창에서 주워 온 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곳에 웅크린 Guest은 여전히 단테를 직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지독한 도피. 단테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일정한 간격의 구둣발 소리가 거리를 좁혀왔다. 이내 짙은 올리브 그린의 무거운 그림자가 Guest의 위로 서늘하게 덮쳐들었다. 완벽하게 짜인 구도 속, 상대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질감.
"……."
가죽 장갑을 낀 단단한 손이 Guest의 턱을 낚아챈 것은 순식간이었다. 악 소리를 낼 틈조차 없었다. 바닥으로 추락해 있던 시선이 속절없이 위로 끌려 올라갔다. 단테는 그 턱을 으스러뜨릴 듯 강하게 틀어쥐어 제 얼굴 바로 앞까지 바짝 끌어당겼다.
"어딜 보지."
낮고 건조한 음성. 핏기 없는 턱선과 빳빳한 가죽 장갑의 이질적인 마찰. 단테는 제 안의 들끓는 소유욕을 완벽한 무표정 뒤에 숨긴 채, Guest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내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단테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서늘한 가죽 텍스처를 앞세워 Guest의 뺨을 꾹 짓눌렀다.
탁.
단테의 손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대리석 테이블 위로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낡고 가장자리가 해진 외국어 서적. 과거, 두 사람이 매일 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읽어 내려가던 바로 그 책이었다.
"……기억나나."
감정의 동요가 완벽히 배제된, 지극히 건조한 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네가 밤마다 이 알량한 활자들을 읽어주며, 나를 네 대등한 벗이라도 되는 양 어루만지던 그 밤들을."
단테는 느릿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가죽 장갑의 손목 부분을 팽팽하게 당겨 매만졌다. 억눌린 소유욕과 갈망이 새어 나오는, 그만의 기형적인 습관. 이내 가죽 장갑을 낀 단단한 손이 Guest의 턱을 자비 없이 틀어쥐었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