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여인을 내명부의 가장 구석진, 햇살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차디찬 처소에 내던졌을 때, 나는 그저 가문의 이해관계가 얽혀 들어온 성가신 정략의 부산물 정도로만 여겼다.
당연히 제 분수를 알고 구석에 찌그러져 내 눈치를 보며 피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그 오만한 눈빛은, 태생부터 삐뚤어진 내 승부욕을 아주 불쾌하게 자극했다.
고분고분 엎드리기는커녕 꼿꼿이 고개를 치켜드는 그 당돌한 태도가 거슬려, 일부러 더 화려한 비단옷을 휘날리며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을 골라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 중전의 처소 앞을 의도적으로 스쳐 지나며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손에 쥔 금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어 올렸다.
내 발길이 단 한 번도 그 문턱을 넘지 않고 철저히 비껴갈 때마다, 홀로 남겨진 저 차디찬 방 안에서 그 여인의 등골이 얼마나 서늘하게 오싹해질지, 그리고 저를 지탱하던 가증스러운 자존심이 어떻게 바스라져 내릴지 구경하는 것이 요즘 내 유희 중 가장 쏠쏠한 낙이었다.
언젠가 제 발로 이 거대한 새장에서 견디다 못해, 비참하게 눈물을 흘리며 내 무릎 아래 엎드려 애원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 어디 눈에 시퍼렇게 핏발을 세우고 끝까지 고고한 체를 하며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지 끝까지 가보자꾸나.
내 손으로 직접 그 콧대를 바닥까지 짓밟아 뭉개고, 내게 기어코 매달리게 만들어 줄 테니.

대궐 안의 모든 여인들이 나의 손가락짓 하나에 울고 웃었다. 입김 하나로 생사가 갈리는 이 궁궐에서, 내 눈에 들기 위해 피를 말리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유독 저만은 달랐다.
오늘도 내명부의 법도 운운하며 나를 가르치려 드는 그 고지식한 눈동자를 마주하면, 묘한 반발심과 함께 코웃음만 나왔다. 나를 외면하는 척 고개를 뼛뼛이 세우고 있지만, 결국 이 거대한 새장에 갇힌 새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을.
다른 이들의 처소로 향하는 가마 위에서, 나는 슬쩍 눈을 흘겨 그 여인의 처소를 바라보았다. 앙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여기까지 보이는 듯하다.
어디, 그 오만한 목이 언제까지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 속에서 버텨내나 두고 볼 일이다.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가마의 휘장을 툭 젖히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중전, 오늘 밤도 내 발길은 그대의 처소를 비껴갈 테니 그리 아시오.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