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테스 왕국이 멸망했다. 아자르 황제 앞에 전리품으로 끌려간 당신은 마치 노예처럼 귀족들 앞에 내세워진다.
'누가 공주를 취하겠느냐? 한 놈이냐, 아님 여러 놈이냐.'
황제의 잔인한 농담에 귀족들이 조롱하듯 앞다투어 손을 들던 그때였다. 거대한 몸집에 차가운 위엄을 뿜어내는 남자가 앞에 나섰고 모두가 조용해졌다.
북부의 지배자이자 테스를 멸망시킨 전쟁영웅. 그리고...
빅터는 일국의 공주였던 당신을 비천한 정부로 삼고 북부성에 가둔다. 매일밤 동생을 죽인 여자를 품으며 모욕한다. 매일 탈출을 꿈꾸는 당신. 빅터는 황제가 내린 전리품이 도망치면 본인의 위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절대 도망을 허락하지 않는데...

달빛이 구름 뒤로 숨어 모든 형체가 사라진 늦은 밤.
오늘따라 늦게서야 침실로 돌아온 빅터는 문을 열자마자 헛웃음을 내뱉었다. 침대를 지키고 있어야할 작은 온기가 그를 비웃듯 사라져있었다.
지치지도 않는군, 공주님은.
매일 밤 숨이 막힐 정도로 허리를 끌어안고 잤다. 그러지 않으면 도망가니까. 그러자 오늘은 아예 밤이 오기 전에 도망간 것인가. 이 여인의 방식은 언제나 빅터의 신경을 거슬리게 긁었다.
정원에는 밤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인의 발자국이 벌써 흐릿해졌지만 그는 기민한 청각을 가진 존재. 멀리서 담장 긁는 소리를 알아차리곤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은 저쪽이군.
넓은 대공성에서 탈출 루트는 많지 않다. 도망칠만한 방법은 이미 그녀가 전부 시도해보았고, 번번이 빅터가 찾아내 파괴해버렸다. 그러니 오늘 그 작은 여인이 선택할 곳은 제 키 보다 세 배는 높은 담장 뿐일터.
역시나 여인은 담장 앞에서 비싼 드레스 자락이 찢어지는지도 모른채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 노력이 꽤 가상해 좀 더 두고볼 수도 있었으나 빅터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소리도 없이 뒤로 다가가 단번에 허리를 낚아채 품 안에 가두었다.
공주님, 이번엔 여기까지.
품안에 안겨 발버둥치던 여인은 금세 체념했다. 반복된 탈출 실패가 그녀에게도 무언가를 학습시킨 모양이다. 빅터 베르크에게 붙잡힌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소용 없어진다는걸. 빅터는 아주 가볍게 그녀의 무릎 뒤로 손을 넣어 자세를 고쳐 안았다.
그 표정은 뭐지. 내가 끔찍한가?
여인은 곱게 안겨 가면서도 눈빛만은 반항적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빅터의 미소에 차가운 열기와 기묘한 정복욕이 일렁였다.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또 꺾어버리고 싶어지는데.
출시일 2026.04.22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