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셨다. 오늘따라 그 빛은 축복이라기보다 칼날 같았다. 화려하게 장식된 꽃길 끝,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이 서 있었다.
한때는 그 옆에 서는 것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오만한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곁에서 그 손을 맞잡고 있는 건, 내가 아닌 북부의 대공 — 나의 기사이자, 오랜 연적이었던 그였다.
주례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찬사가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내 세계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오직 당신의 표정만을 쫓았다.
나를 향할 때는 다정한 우정이었던 그 눈동자가, 그를 향할 때는 절실한 사랑으로 일렁였다. 그 사소한 차이가 내 심장을 조용히 난도질했다.
'차라리 네가 불행해 보였다면, 내가 널 가로채기라도 했을 텐데.'
하지만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없었던, 오직 그만이 끌어낼 수 있는 생기 가득한 미소였다. 나의 패배는 이미 오래전, 당신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갈 틈이 단 한 뼘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 결정된 것이었다.
맹세합니다.
카르시안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신의 수줍은 대답.
이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고, 나는 공식적으로 당신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페이지'가 되었다.
내 사랑의 장례식은 이렇게나 화창한 날에 치러졌다.
박수갈채 속에 두 사람이 입을 맞출 때, 나 또한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박수를 쳤다. 입가에는 비릿한 슬픔 대신 완벽하게 연조된 축복의 미소를 걸었다. 그것이 황태자로써, 그리고 끝내 고백하지 못한 겁쟁이로서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였다.
찬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독한 술 한 잔으로도 가라앉지 않던 열기가 그제야 조금 식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뒤편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발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목소리. 돌아본 곳에는 피로연을 위해 조금 더 가벼운 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녀가 서 있었다. 면사포를 벗어 던진 당신의 머리칼 위에는 이제 신부를 상징하는 화려한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Guest.
내 인사는 딱딱했고, 거리는 멀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내 팔을 붙잡으며 "에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요?"라고 말하려다, 문득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굵은 결혼반지를 의식한 듯 멈칫했다. 그 찰나의 머뭇거림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행복해 보이는군.
네. 정말로요. 사실... 조금 무섭기도 해요. 이 행복이 깨질까 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 맺힌 건 그가 평생을 바쳐도 닿지 못했던 안도감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자가 그대를 얼마나 아끼는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거짓말이었다. 속으로는 그가 실수를 하길, 그녀를 외롭게 하길, 그래서 다시 내게 돌아오길 바라는 추악한 마음이 꿈틀댔다. 하지만 그녀의 맑은 눈동자 앞에 서면 그런 감정조차 죄악처럼 느껴졌다.
'좋은 친구.' 그 잔인하고도 다정한 선고에 나는 결국 무너질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슴 한구석이 도려져 나가는 통증 속에서도, 나는 신사답게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등 위 '허공'에 입을 맞췄다. 차마 그 살결에 닿을 용기조차 없어서.
물론이야.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난 언제나 그대의 뒤에 있을테니.
그녀가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테라스에는 차가운 달빛만 고였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은은한 장미 향기가 내게 남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황궁의 깊은 회랑. 노엘은 황태자로서의 위엄을 갖춘 채 서 있었지만, 그의 눈은 피로와 상실감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군화를 울리며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제국의 유일한 대공이자, 오늘 자신이 연모하던 여자를 끝내 아내로 맞이한 카르시안이었다.
황태자 전하, 연회는 즐거우셨습니까?
카르시안의 인사는 예의를 갖춘 듯했으나, 오만한 눈은 그의 왕관을 비웃고 있었다. 그는 노엘 앞에서 멈춰 서서, 마치 오랜 전쟁의 승기를 잡은 기사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전하께서 하사하신 축하주가 아주 달더군요. 제 아내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제 아내'. 그 말 한마디가 노엘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한 번도 정식으로 내 여자라 부르지 못했던 그녀를, 저 남자는 너무나 쉽게 소유하고 있었다.
...벨로아 대공, 언사가 지나치군. 그녀는 이 제국에서 내 곁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다.
'머물렀던'이라. 그 과거형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요.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압도적인 체격 차이가 노엘을 짓눌렀다. 그는 노엘의 가슴팍에 달린 황실 문장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낮게 읊조렸다.
전하께서는 이 화려한 껍데기를 지키느라, 그녀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조차 모르셨겠죠. 전하가 품위니 뭐니 따지며 '우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계실 때, 전 그녀의 가장 비겁한 욕망까지 받아냈습니다.
그건 네 놈이 비겁하게 파고든 것이지! 내가 그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정무를 버리고—
버렸다고요? 아니요, 전하. 당신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카르시안의 비릿한 웃음이 복도를 메웠다.
전하께서는 황좌를 선택했고, 제국을 선택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어서 그녀를 방치했죠. 하지만 전 그녀 하나를 갖기 위해 제 목숨과 대공령 전체를 걸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차이는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카르시안은 노엘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들으라는 듯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그럼, 부디 고독한 황좌에서 평생 만수무강하시길.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