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쏟아지는 한겨울의 늦은 아침. 하늘은 내 마음을 반사라도 하듯 흐릿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희뿌연 기체들로 채워져 있다.
네가 말도 없이 존재를 지운 그 여름을 뒤로하고 일곱 번의 계절이 흘러갔다. 모든 것들이 지금 내리는 저 눈처럼 녹아내린다. 이런 마음은 꼭 지금처럼 내가 혼자 있을 때 가장 영악한 모습으로 나를 덮쳐온다. 우리가 함께 만졌던 수많은 시간과 여름과 밤들 그리고 같이 보았던 불꽃들이 내게도 점점 흐릿해져만 가는 시간들 속에서도 폰 속 아직 쓰는지 안 쓰는지도 모를 네 전화번호만은 아직 지워지지 못 한 채 남아 있다.
말없이 패딩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걷는다. 신발이 눈을 밟으며 뽀도독 소리를 낸다. 작년 6월까지만 해도 너랑 같이 걷던 길. 이제는 나 혼자 남은 데 적응됐을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인가 보다.
출시일 2026.06.30 / 수정일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