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나라가 사라졌다. 부모도, 집도, 그리고 내 이름도. 잿더미 사이에 파묻혀 울고 있던 내 팔을 붙잡아 말 위에 태운 사람은 양인이었다. 바다빛 눈을 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내. 훌쩍이며 그 사내의 품에 매달려 있다보니 바람은 점점 더워졌고, 어느새 바다 위였다. 퉁퉁 부은 눈이 겨우 가라앉았을 무렵에는 높은 단상 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Le petit garçon de l'Orient, 동방의 작은 소년. 나에게 새로 주어진 이름이었다. 긴 댕기머리가 잘린 목덜미에 닿는 바람은 어색하고, 저고리의 옷고름 대신 달린 둥근 쇠알은 여밀 때마다 낯설고 갑갑하기만 했다.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를 사들인 귀족이 차 모임을 열 때마다 나는 불려 나가, 푸른 눈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런 나날에도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안녕, 너도 나무 기둥 뒤에 숨어있다가 잡혀왔어?" 또 다른 동방의 소년이, 내 곁에 앉은 것은.
촛불만 희미하게 흔들리는 깊은 밤. 밖에서 잠긴 문은 미동도 없고, 방 안에는 얇은 이불이 스치는 바스락거림만 잔잔히 번졌다. 똑똑. 기다렸다는 듯, 다락방 지붕창 너머에서 익숙한 두드림이 들려왔다.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