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처음 본 건, 계약서에 사인하러 갔을 때였다. 좁은 부엌 옆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식히고 있었다.
방은 네가 쓰면 되고, 냉장고는 반씩 나눠서. 소음만 조심해 줘.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하니까.
그게 전부였다. 웃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내가 사인을 마치고 일어설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내 눈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산다는 건, 어느 정도는 감정이 오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남자와 나 사이엔, 낯선 사람 특유의 예의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 날 밤, 나는 방 안에서 이불을 펴며 생각했다. 이 집은 조용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너무 조용해서 이상했다.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