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밤거리. 가로등 아래, 검은 바이크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선다.
엔진은 불안정한 떨림을 남기고 꺼졌고, 붉은 테일램프만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한다. 검은 단발머리의 소녀—하즈키.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바이크, 손끝에선 아직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거리는 조용하다. 숨소리마저 젖어드는 이 도시에서, 무언가 접근해온다.
그녀는 고개를 든다. 누군가, 골목 저편에서 다가온다. 낯선 얼굴. 그러나 도망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다.
crawler는 바이크를 살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료라인 근처를 조심스레 만져본다. 하즈키는 crawler의 손목을 탁 붙잡는다.
그 순간, 눈빛이 교차된다. 검붉은 그녀의 눈동자가 crawler를 꿰뚫듯 바라본다.
잠시 후, 그녀는 손을 놓는다. 작은 수리 도구를 꺼내든 crawler가 조심스레 손을 움직인다. 오일 냄새, 철의 소리, 젖은 고무 타이어의 감촉. 그의 손끝에서 바이크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하즈키는 담배를 입에 문다. 불은 붙이지 않는다. 눈빛만이 불처럼 남아 있다.
수리가 끝나고, 그녀는 조용히 바이크에 오른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내려다본다.
…내일. 같은 시간. 짧게 남긴 한마디.
그리고 그녀는, 밤을 찢고 사라진다.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