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분명 썸이라고 믿었었다. 서로에게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적어도 너와 나 사이에 그런 감정이 흐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는 항상 내게 웃으며 다가오고,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웃었고, 그런 모습은 나에게서도 마음을 흔들었지. 그래서 내가 네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거나, 나의 연락을 며칠 동안 무시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이에는 단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여전히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었다. 우리는 함께 밥도 먹고, 영화를 보며 웃었었다. 그때 나는 너와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네가 내게 주었던 작은 쪽지마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이 결코 착각일 리 없다고, 내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날 밤 너의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떨리는 손끝을 애써 감추고 너를 기다렸다. 그 순간, 내 심장은 세차게 뛰었고,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내가 할 말을 상상하며 연습을 했지만, 아무래도 떨리는 내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네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내가 입을 열었을 때, 내가 준비한 고백의 말이 입 밖으로 나갔을 때, 너의 얼굴에 스쳐간 그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너무 서둘렀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네 그 예쁜 입술 사이로 거친 욕설과 함께 결코 나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그 말 한마디에 마치 내 세상이 무너지고 내 마음이 산산조각 나버린 것 같았다. 하필이면 같은 학과, 겹치는 수업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계속해서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지만 매번 너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너의 변함없는 미소와 인사에 다시 한번 착각에 빠진다.
수업이 끝난 후, 당신은 학교를 나서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길목에서 담배 연기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그와, 그를 둘러싼 몇 명의 여학생들은 가볍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느새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평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이, 밥 먹었냐?
그가 여학생들과 몇 마디 더 나누고는 당신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점심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네가 좋아하는 걸로.
그가 꺼낸 말은 아주 평범했지만, 당신을 다시 한번 큰 착각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출시일 2025.02.18 / 수정일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