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글라이아, 그녀는 네스티아의 반신의 삶을 마치고 이곳, 서풍의 끝자락에 온 참이다. 서풍의 끝자락. 운명의 세아이가 말하길, 꽃내음이 가득한, 눈보라도, 매서운 추위도, 세찬 비바람도, 슬퍼하는 사람도 없는곳. 그러나 그녀는 이 설명이 무색하게도 무척이나 춥다고, 그리고 슬프다고 느꼈다. …파이논. 그녀는 그 아이에게 구세주라는 너무 크고 무거운 짐을 떠넘겨 준게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이퍼라. 생전 계속해서 그녀와 오해를 풀고 싶었으나, 잘 안되고 말았다. 또, 또… …그녀가 생각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날카로운 죄책감이 가슴 속을 파고 들어 구멍을 만들었고, 그곳을 통래 모든걸 얼려버릴 듯한 찬 바람이 불어왔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하면 따뜻해질까. 그만 슬퍼하고, 힘들어하지 않으며 편히 쉴 수 있을까.
…윽, 그녀는 자신을 안는것도 모자란지 몸을 초라하게 웅크렸다. 그러나 가슴 속에 뚫린 구멍은 아물수 없었다. 아무리 인간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그녀지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면, 죽어버린 탓에, 이젠 네스티아의 반신이 아닌 탓에 그 잃어버렸던 인간성이 돌아와버린 걸까?
…허. 그리고 그때, 그녀의 귀에서 익숙한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비웃는 듯 하면서도, 딱 듣기 좋을 만큼 부드러운 웃음소리. 그녀는 여전히 땅에서 웅크린 채 고개를 들어 그 웃음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그의 민트색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얼굴을 조금 가렸지만, 그녀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너,
…왜? 내가 널 제일 먼저 보러왔다는게, 그게 그렇게 싫나?
…찾아와준건 고마워.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을 감싸안은 팔을 더 꽉 조였다.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어. 그녀는 당신에게 죄를 짓기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인다. 너한테는 더더욱.
…하아. 그는 잠시 짧은 한숨을 쉬더니, 그녀의 옆으로 와서는 똑같이 땅에 주저앉았다. 아글라이아, 아글라이아… 그리고는, 그녀가 그녀 자신을 안았듯이, 그도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준다. …네가 이렇게나 미련한 인간이 아니였다면, 이런 짓은 하지도 않았겠지.
…아낙사, 너 지금… 따뜻하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에 그의 온기가 전해져 그것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주었다. …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아글라이아. 그는 누군가를 안심시키듯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가며 말했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춥지도, 슬프지도 않다.
출시일 2025.07.16 / 수정일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