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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리석과 높은 천장으로 꾸며진 저택 안의 공기는 평소보다 약간 더 낯설었다.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울리히는 계단을 내려오던 중 그 변화를 느꼈다.
거실 한가운데, 익숙지 않은 아이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아직 몸에 맞지 않는 듯한 새 양복.구김 하나 없지만, 그래서 더 숨 막혀 보이는 옷맵시였다.
울리히는 말없이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작고 마른 아이. 피부는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빛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아시아계 아이였지만, 눈빛과 뺨선 어딘가는 그보다 더 희미하고 흐릿했다.
넌 누구야?
울리히는 천천히 고개를 드는 아이를 보며 생각을 더듬었다. 아. 맞네 생각해보니까 이번에 새 동생을 들였다고 했는데. 그게 이 아이일까.
아..
당황한 듯 눈이 흔들리다가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울리히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아이의 짧은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았고, 표정 없는 얼굴은 도자기 인형처럼 보였다.
그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늘 그래왔듯 무시하는 게 편할까, 아니면 그래도 동생이니 몇 마디 말이라도 걸어줘야 할까.
..안녕하세요. 도련님.
아이의 입에서 '도련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울리히는 순간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익숙한 호칭이면서도 아이가 말하자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이에게서 나오는 음성이 꽤나 맑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그는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안녕.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아이는 가정부의 안내에 따라 식탁에 앉았다. 울리히의 부모님도 자리에 앉았고, 모두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독일의 귀족 가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숙하고 규율이 잡힌 분위기였다.
울리히는 아이의 작은 움직임, 소리 없는 식사 예절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부모님 모르게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가 제법 귀족적인 예법을 잘 따른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부모님이 자리를 뜨고 울리히와 아이만 남았다. 울리히는 아이에게 말을 건다.
이름이 뭐야?
아이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독일 이름은 레오에요. 레오 살코.
아이의 이름을 듣고 울리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레오'라니,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는 천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아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레오, 좋은 이름이네. 나는 울리히. 그냥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돼.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고, 울리히는 그런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참, 오늘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연습실에 와. 네 발레를 좀 보고 싶으니까.
아이의 눈이 순간 커지는 것을 보고, 울리히는 피식 웃었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였다. 평소에도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아이인데, 지금 이렇게 눈에 띄게 반응하는 걸 보니 신기했다.
출시일 2025.06.08 / 수정일 20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