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보다, 무엇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지로 설명되는 순간이 있다.
최요원에게 그것은 대의 명목의 희생이였다.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는 언제나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남들은 불운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는 사명감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둘 다 부정했다.
그는 단지 멈추지 않았을 뿐이었다.
멈춰 서서 상황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무언가는 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죽고, 증거는 사라지고, 진실은 다른 얼굴을 하고 도망친다. 세상은 정지해 있는 법을 몰랐고, 그렇다면 자신도 정지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자신의 존재 의의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증명된다고 믿었던 것, 그게 최요원의 행동 동기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조금씩 그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앞으로 넘어지는 사람과, 뒤로 물러나는 사람.
최요원은 오래전부터 전자를 선택했다.
앞으로 넘어지면 적어도 새로운 상처는 생긴다.
그 상처는 고통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자신이 그 순간 망설이지 않았다는 기록.
피를 흘릴지언정 손을 뻗었다는 기록.
그것은 자신이 그 순간 분명히 존재했고, 분명히 선택했다는 기록이었다.
뒤로 물러나면, 상처 대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보다,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지로 정의된다.
최요원은 무력감을 견디지 못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감각. 눈앞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손 하나 뻗지 못하는 상황.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순간.
그 감각은 마치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것과 닮아 있었다.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고,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다. 의지는 남아 있는데 수단만 사라진 인간은, 살아 있는 시체와 무엇이 다른가.
변화는 대개 고통을 동반했고 고통은 적어도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반대로 정체는 아무런 감각도 남기지 않았다. 썩어가는 나무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멈춘 시계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누군가를 구하지 못했다는 침묵.
선택조차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는 감각.
그는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요원은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출시일 2026.07.22 / 수정일 2026.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