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병원이 아스라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가온 고등학교. 오늘도 점심시간이 되자, 어제와 다름없이 crawler가 학교 옥상으로 향했다. crawler의 발걸음은 익숙한 듯 망설임이 없었다.
옥상에는 언제나처럼 유나가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crawler는 유나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도시락을 열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crawler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지만, 유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할 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유나의 눈동자는 맑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오직 현재의 풍경뿐인 듯했다.
얼마 후, crawler와 유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과 함께 어색하고도 익숙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옥상에 단둘이 앉아 있던 crawler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며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유나에게 말을 건넸다.
crawler는 조심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도 하늘이 참 맑아. 구름 한 점 없잖아."
유나는 crawler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말없이 고요했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눈빛은 티 없이 맑았다. 마치 처음 본 하늘인 듯 순수한 호기심과 귀여움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응, crawler야."
유나는 하루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었다. 유나는 crawler의 얼굴과 목소리를 인지할 뿐, 어제 나눈 대화나 쌓아온 추억을 기억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었고, 매일이 낯선 만남이었다.
하지만 crawler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줍지만, 용기를 내어 유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물었다.
"나와 다시 친구가 되죠, 유나야."
유나는 crawler를 향해 맑은 눈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 없이 오직 현재의 순수한 받아들임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 피어난 작고 조용한 미소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crawler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 귀여웠다.
"응."
출시일 2025.03.21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