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건물들로 인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음침한 골목에서 담배나 한 대 피고 있자니 기분이 축 처지기 그지없다. 뿌연 담배가 시야를 가득 채우자 사념에 잠기기 시작한다. 예전에 처음 흡연할 때는 지금과 달랐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나날들이 지나간다. 그건 하루였고, 이틀이었고, 이윽고 근래가 되었다. 그날도 그저 그런 날일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비슷하고도 같아 보이는 시간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감히 자부할 수 있다. 그날은 내가 지내왔던 무수히 많은 날들과는 다른 색채를 띄고 있다고 말이다. 그냥 지나가는 행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내 앞에서 멈춘다면 사람은 먼저 무슨 생각이 들까. 적어도 지금의 난 이 여자의 머리통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시선은 이어서 그녀의 입술로 향했다. 열심히 무언가를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을 보니 퍽 귀엽게도 느껴졌다. 딴 이들은 내 문신 때문인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지 지레 겁먹기 일쑤던데 이 여자는 겁도 없는 건지 내 눈을 올곧은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여자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자니 이곳이 어린이 구역이고, 여기서 흡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으며 담배를 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귀엽잖냐.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서는 그대로 관심이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린다. 그렇게 멀어져만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조금 더 얘기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괜스레 얼굴에 열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근데 어떡하지. 그쪽 관심은 끝났을지 몰라도, 나는 아닌데.
그녀에게서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는 그녀를 보고 시선은 이어서 책의 제목으로 향했다. 제목이 심플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라 생각하니 궁금해졌다.
드디어 미쳤나 보다. 책과 인연을 끊은 지가 언제인데 연도 없던 서점에서 그녀가 읽었던 책을 사서 읽었다. 글씨 많은 건 질색이어서 책을 열자마자 닫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슨 책을 읽은 걸까 싶어 꾹 참고 보았다.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이 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
이게 그렇게 재밌어?
그녀에게서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책을 읽는 그녀를 보고 시선은 이어서 책의 제목으로 향했다. 제목이 심플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라 생각하니 궁금해졌다.
드디어 미쳤나 보다. 책과 인연을 끊은 지가 언제인데 연도 없던 서점에서 그녀가 읽었던 책을 사서 읽었다. 글씨 많은 건 질색이어서 책을 열자마자 닫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슨 책을 읽은 걸까 싶어 꾹 참고 보았다.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이 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
이게 그렇게 재밌어?
처음에는 그저 평소보다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미세한 변화에 점 점 익숙해지듯 나는 서서히 늪에 빠져들 듯 잠겨 들어갔다. 이윽고 소리가 안 들린다고 깨달은 것은 사소한 날이었다. 알람 소리가 안 들려서 늦잠을 잔 날이었다. 알람은 제대로 울리고 있었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최대로 키워봐도, 그것은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창문을 열어봤다. 출근하는 차량의 소리도, 시끄러운 도심의 소리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후천적 청각장애(acquired hearing impairment)
나에게 소리는 희미해져서 더는 가치를 잃어갔다. 아니, 가치가 더 높아져만 갔다.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평소처럼 밖으로 나섰다. 치료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문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외출이라는 단어가 이윽고 나에게 공포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감 중 단 하나의 감각이 차단된 것뿐이었는데도 무서웠다. 뒤에서 차량이 울리는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해서 뒤를 돌아보니 차량이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고작 깜짝 놀랐다는 단어로 표현이 될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익숙한 풍경, 늘 걷던 길임에도 분명한데. 그저 고요했다.
겨우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는데 표정만으로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듣는 거구나. 사람이 너무 상심하면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그 뒤로 사람의 눈보다는 입모양을 보며 대화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래서 이제는 상대방의 입모양으로 대상의 말을 이해해야만 했다. 아직 잘하는 것은 아니라서 속도가 빠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다 놓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재미.. 는 없는 책이에요. 근데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출시일 2024.12.18 / 수정일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