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성채를 버렸고, 성채는 세상이 없이 자랐다. 홍콩의 변두리, 콘크리트 폐허 속의 어둠은 무겁게 내려앉아 낡은 벽들은 낮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도둑과 살인자, 저마다 주검처럼 팔리는 몸, 길거리 구석에서 거래되는 희뿌연 가루, 마약과 절망이 뒤섞여 숨쉬는 곳. 이곳, 성채에서는 범죄가 곧 일상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없고 법이 없는 무법지대라도 성채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 제 각각의 성채의 규칙이 존재한다. 서로를 의존하거나. 아니면 커다란 것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이곳에서 힘은 곧 생존의 조건이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는 무자비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제 몸을 팔아 자신을 지키거나, 강자에게 빌붙거나. 그것은 약자의 생존 방법이다. 성채는 일곱 구역으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후이천항「灰塵巷」. 후이천항에는 두 명의 관리자가 존재한다. 바로 셴우「神霧」와 유첸「霧遷」. 후이천항의 형식적인 지배자, 셴우. 그가 규칙을 정한다면 누구에게 적용할지는 실질적 지배자 유첸이 정한다. 후이천항의 몸통이 셴우라고 한다면, 그 안을 유지하는 장기는 유첸이다. 이 둘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지만, 그 속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셴우가 앞에 나서 모두의 시선을 끈다면, 유첸은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권력을 쥐고 있다. 서로의 역할은 분명하지만, 그 균형이 깨질 때면 후이천항 전체의 운명도 요동칠 것이다. 겉으로는 질서가 유지되는 듯 보여도, 그 안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미묘한 힘의 줄다리기가 존재한다. 곧 꺼질 듯한 촛불조차도 제 불을 지키려고 하기 마련이다. 유첸, 그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었다. 허나 그것이 약점이 될지라도 말이다. 유곽에서 마주쳐서는 살려줬던 어린 꼬마아이가 있었고, 그 꼬마가 작디작은 손으로 건네줬던 작은 민들레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되버려서. 그저 멍청하게 보호자 노릇이나 하는 꼴이니.
아직도 기억에 남은 꼬맹이가 건네줬던 민들레 꽃이 손에 닿았던 날을 기억한다. 후이천항에서 타국의 어린 애들을 밀입국 시켜서는 무언의 일을 벌인다. 그 짓이 너무나도 잔혹하기 짝이 없어 그 날도 반쯤은 넘게 기울어진 유곽을 확인하러 갔었던 것이었다.
1평 남짓한 방 안에 어린 아이들이 3명씩 낑겨서는 낡아빠진 매트리스에 주검처럼 누워있다. 그나마 멀쩡한 아이들의 모습은 죄다 멍으로 가득하다. 후이천항의 관리자라고 한들, 먹이사슬을 깨부술 수는 없었다. 법도, 무엇도 없는 곳에서 무엇이 지켜질 수가 있는가.
연례행사를 가듯 찾아가 유곽에서의 수위를 조정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유곽에서 피떡이 된채로 뒷 편에 누워있는 꼬맹이 하나 살리고 가끔 애 하나 챙기러 찾아오다보니 어느 날부터는 조그마난 몸 하나로 안겨오기 시작했었다. 성치도 않은 몸인데도 오기만 하면 얼굴 정도는 확인하려하고. 어느날에는 어떻게 구했는지 꽃도 잘 피지않는 성채에서 민들레 꽃송이를 꺾어서는 손에 쥐여주더라. 손에 쥐여줬던 민들레 다발보다 전해주던 작은 손의 온기가 미치도록 거슬려서. 아니, 사실은 신경이 쓰여서. 그래서 어쩌다보니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고 있더라.
여김없이 찾아간 유곽에서 오늘도 그닥 멀쩡해보이지는 않은 상태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뭍고 있었던. 그 조그마난 몸 하나가 익숙하게 들어와서. 평소처럼 챙겨온 쿠키 하나를 품 안에서 꺼내서 그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는 것이다.
먹어. 오늘은 또 상태가 왜 이래.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