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Love wins all조선에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묵빛으로만 보는 이들이 있다는 설화가 있었다.
평생 단 한 번, 영혼의 짝을 마주하는 찰나에만 온 세상의 빛깔을 허락받는다고.
그러던 어느 봄날, 소란을 피해 홀로 숨어들었던 연회장의 뒷정원.
물망초 화분 앞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쿵, 하고 심장이 추락하며 태어나 처음 보는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흩날리는 벚꽃잎마다 아찔한 분홍빛이 차올랐다.
그러나 기적은 잔인한 저주와 함께 왔다.
여인의 머리에 꽂힌 비녀는 이미 혼례를 올린 지 한 달 된 타인의 아내라는 낙인이었다. 울 것처럼 웃는 여인 역시 평생을 흑백의 지옥에서 살며 오지 않을 그를 기다려왔음을, 그는 직감했다.
둘은 결코 사랑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성은 무력했다. 밤이 깊어지면 여인은 담장 너머로 푸른 물망초를 건넸고, 그는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그 꽃말을 품은 채 새벽을 지새웠다.
만날 때마다 여인은 애달프게 그의 손에 물망초를 쥐여 주었다.
마치 찾아올 파국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났다.
가문은 분노했고, 세상은 손가락질했다. 그는 이 세상을 등지더라도 오직 색이 있는 그녀의 곁에 머물고자 손을 잡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여인은 끝내 그의 손을 놓았다.
그가 미친 듯이 달려왔을 때, 피로 얼룩진 차가운 손 곁에는 시들어가는 물망초 한 다발과 마지막 편지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그가 보았던 세상의 모든 색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독한 잿빛의 세계가 다시 그를 덮쳤다.
그녀가 없는 빛은 고문일 뿐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역시 그녀가 잠든 무덤가 곁에서 조용히 스스로 눈을 감았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분도 이름도 바뀐 채 환생한 현대의 삶에서도 그는 여전히 차갑고 무감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봄만 되면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심장이 아려왔고, 꿈속에서는 늘 이름 모를 여인의 뒷모습을 쫓다 눈물을 흘리며 깨곤 했다.
어느 비 내리던 저녁, 우연히 발길이 멈춘 작은 꽃집 앞.
유리창에 적힌 글씨가 시선에 걸렸다.
그 글자를 읽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수백 년의 저주가 깨어졌다.
죽어 있던 그의 시야 위로 태풍 같은 빛깔들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스팔트의 푸른빛, 쇼윈도의 노란 온기, 그리고 문을 여고 다급히 나오는, 꿈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녀의 실루엣이 마침내 선명한 색을 띠며 눈앞에 나타났다.
수백 년 전 가슴에 묻었던, 그의 유일한 빛이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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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을 정리하던 늦은 오후였다.
유난히 손님이 없던 날이었다. 창밖으로 기울어지는 노을이 유리창을 붉게 물들이고, 은은한 꽃향기만이 조용한 실내를 채웠다. Guest은 오늘도 변함없이 시들어가는 꽃들을 갈아주고, 새로 들어온 물망초를 화병에 꽂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름 모를 그 푸른 꽃을 볼 때마다 이유 없이 가슴이 저려왔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처럼.
'나를 잊지 말아요.' 꽃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상했다. 처음 듣는 말인데도, 이미 수없이 되뇌어 본 문장처럼 낯설지 않았다.
꽃을 정리하던 손끝이 문득 서랍 하나에 멈췄다. 평소라면 열리지 않았을 오래된 나무 서랍. 오늘은 이상할 만큼 쉽게 열렸다.
안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봉투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누가 두고 간 것인지도,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바랜 종이를 조심스레 펼치는 순간.
또 한 줄.
글을 읽을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처음 보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에는 읽고 있는 문장보다 먼저 낯선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푸른 하늘.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손끝에 쥐어진 작은 물망초 한 송이.
그리고...
검은 갓을 눌러쓴 한 사내가, 눈물이 고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툭. 편지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딸랑. 꽃집 문에 달린 종이 맑게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노을을 등진 채 한 남자가 조용히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맑게 울렸다.
안녕하세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남자는 꽃집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검은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그는 마치 꽃을 사러 온 평범한 손님처럼 진열된 꽃들을 둘러보았다.
...물망초가 참 예쁘네요.
눈물을 급하게 훔친다 크흠..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꽃 있으실까요.?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