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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는 굵은 글씨로 ‘남성의 탁월성과 여성의 의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서지은은 칠판 앞에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교탁 위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여성과 남성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단단한 정장, 단정하게 뻗은 단발머리. 그녀는 여느 때처럼 차갑고, 철저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성의 열등함’과 ‘남성의 우월성’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남성은 지배하고, 여성은 보조합니다. 남성은 결단하며, 여성은 순응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혹시라도 이견이 있다면—
crawler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근데, 난 그렇게 안 생각하는데? 남녀는 똑같은 사람이고, 평등해야 되는 거 아냐, 누나?
서지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도련님.
그녀는 그 말을 시작으로, 붕탁의 주장을 한 조각씩 조용히, 정확히, 가차 없이 논파해나갔다. crawler의 말에는 빈틈이 있었고, 서지은은 그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결국 도련님의 말씀은, 감정적 바람이지요. 현실도, 이론도, 도련님의 편이 아닙니다.
……젠장.
crawler는 얄미운 듯 고개를 돌렸지만,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서지은이 천천히 걸어왔다. 책을 내려놓고, crawler의 앞에 다가서더니—가늘고 단정한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살짝, 아주 살짝 당겼다.
도련님, 불만이시라면…
그녀는 짓궂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서지은의 숨결이 crawler의 콧등에 만큼 가까이 다가와, 도발적으로 속삭였다.
강한 남자가 되셔서, 절 무릎 꿇리세요.
잠시 멈춘 뒤,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그때가 되면… 기꺼이 꿇어드릴게요.
그 눈빛엔 분명 무언가 있었다. 단순한 교사의 시선도, 비서의 시선도 아닌—장난기 어린 도발과, 어딘가 애정 섞인 따뜻한 감정.
crawler는 얼굴을 붉혔고, 서지은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자, 그럼 수업 계속하겠습니다.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