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수많은 모래에도 각각의 이름은 존재했다. 검은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 이 끝없는 권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을 때면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 손끝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흔히 존재 이유라 불리는, 세상 만물은 태어날 때 자신만의 소명을 부여받곤 하였다. 지배, 그것이 카히르의 소명이었다. 황금 권좌에 앉은 권태로운 두 눈이 지상을 향한다. 위대한 사막의 태양은 끝없는 영원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명령이면 낮은 밤이 되었고, 온갖 진귀한 것들이 남자를 숭배하며 밤새 노래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은 인간의 형상으로 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윽고 사막의 왕국을 찾아가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속삭인다. 막대한 부와 영원한 권력, 끝없는 번영을 약속할 테니 제게 아름다운 신부를 달라고. 욕심에 눈이 먼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신부로 바치겠노라 맹세하였다. 태양이 눈부시게 타오르던 어느 날, 신과 인간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황금이 넘실거리는 오아시스, 춤추는 짐승들, 약지에 자리 잡은 맹세의 반지까지. 사람의 흉내를 내며 신은 제법 즐거운 상태였다. 오랜만에 가진 유일한 자신의 것, 그녀는 곧 영생을 배울 테지. 식이 끝난 고요한 밤, 카히르는 세상의 모든 빛을 꺼트렸다. 감히 어느 누구도 제 신부를 보지 못하도록. 그러나 불행히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를 맞이한 것은 여인이 아닌 텅 빈 침실이었다. 지상의 모든 곳 신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으나, 단 한 가지. 그녀는 죽음을 통해 그로부터 완전하게 또 완벽하게 도망쳐버렸다. 그로부터 천년이 지났다. 신의 분노로 인해 왕국은 하루아침에 멸망을 맞이하였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수많은 보물과 역사가 사막 깊숙한 곳에 묻혀있을 터. …여인의 손끝이 비석에 새겨진 고대 설화를 훑으며 내려간다. 어쩐지 서늘한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미지(未知)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땀에 젖은 피부 위로 까끌거리는 모래가 엉망으로 달라붙어 왔다. 이제 곧 해가 진다, 더 늦기 전에 이 빌어먹을 사막을 벗어나야만 했다. 어째서 길을 잃은 것일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모래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 몸이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신부는 고개를 들라.
아무것도 없는 땅,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비록 어지러워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땀에 젖은 피부 위로 까끌거리는 모래가 엉망으로 달라붙어 왔다. 이제 곧 해가 진다, 더 늦기 전에 이 빌어먹을 사막을 벗어나야만 했다. 어째서 길을 잃은 것일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모래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 몸이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신부는 고개를 들라.
아무것도 없는 땅,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비록 어지러워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도와… 주세요.
벌써 몇 시간째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하였다.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천년, 몇십만 번의 태양이 차오르고 또 저물던 영겁의 시간.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카히르는 제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남자의 황금빛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제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이름은 분명 증오이리라.
태양에게 손이 붙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고귀한 눈동자 색도, 옅게 배어 나오는 피부의 광채도 아닌 오로지 맞닿은 열기가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인간이 이렇게 뜨거울 리 없구나.
당신, 정말로 신이에요?
아무리 신을 믿지 않는 시대라지만, 제 눈앞에 펼쳐지는 권능을 속임수 취급하는 여인이 가소로웠다. 이리도 아둔한 자에게 속아, 꼬박 천년을 기다린 꼴이라니.
그래서 또 도망갈 텐가?
카히르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전 그 여자가 아니거든요.
고고학 연구를 위해 사막을 찾은 것이 화근이었다. 남들 말대로 그저 도서관에 박혀 활자나 읽는 편이 훨 나았을 텐데. 미지(未知)는 결국 그녀를 미로로 이끌었다.
모래에 새긴 글귀, 바람이 지나면 사라지리. 태양은 모르고, 달도 잊으나, 오직 사막만이 기억하리.
오래전 그가 처음 지상에 내려왔던 시절, 배웠던 시가 어렴풋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노래였을지도. 카히르는 눈을 감고 기억의 파편을 더듬기 시작했다. 뜨거운 모래 위, 천천히 움직이던 손가락.
사랑, 그가 쓴 단어였다.
미로 같은 궁전을 가로지르며 무작정 내달렸다. 남자가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영원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녀는 인간이었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살아있는 인간. 멈춰있는 모래시계 따위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후우… 윽.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사막의 아지랑이가 끔찍하게 피어오르며,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듯했다.
제 신부가 또다시 도망친 사실도 모른 채, 신은 깊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항상 꾸던 악몽, 영원한 방황. 그는 언제나 홀로 사막 위에 서있었다.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과 섞이고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웃음이 나오는데도 웃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를 흔들고, 또 쉽게 사라져 버린다. 모래보다는 신기루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백 번째 태양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이제 더는 못 걷겠군, 카히르의 몸이 무겁게 무너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2.07 / 수정일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