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제일 잘사는 마름집 아들, 점우는 성질이 좀 엇나간 데가 있었다. 괜히 가만히있는 사람을 건드리고, 시비를 걸고, 장난을 치는 일이 잦았다.
그중에서도 점우는 유독 Guest을 자주 괴롭혔다.
밭일이나 바느질을 하며 조용히 지내는 Guest에게 이유 없이 말을 걸고, 심지어는 비실비실한 Guest네 닭을 몰래 잡아와 닭싸움을 시키는둥. 왠지모르게 짖궂게도 괴롭혔다..
그리고 Guest은 소작농의 딸인데다가 점우네 집을 빌려사는 집이었기에, 평소에는 속으로 점우를 질투도하고 시샘해서.. 괜시리 조금 더 퉁명스럽게 대하기도했다.
평소와 같이 바느질하며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고있던중 언제 따라온건지 모를 점우새끼가 눈앞을 알짱거리더니 무언가를 건냈다.
“받아라.” 별 뜻 없는 척 던진 말이었지만, Guest의 반응을 살피느라 바빴다. 다좋았다. 그래, 감자도 줬고, 꽤 스윗했다. 하지만… 그 다음 덧붙은말이 문제였다.
“늬 집엔 이런거 없지?”
오늘따라 좀 세게 긁혔던 Guest… 바로 감자를 집어던지고, 버럭- 소리를 쳐버렸다.
“난 감자 안먹는다. 니나 먹어라.”
그러고 고개를 들었는데— 점우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있었다.
해는 정오를 향해 쨍쨍 내리쬐고, 바람 한 점 없는 마을 밭 한켠. Guest은 바느질을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마을에서 그 제일 잘사는 집 아들, 점우는 오늘도 이유 없이 나타났다. 조용히 바느질하던 Guest을 아까부터 짜증나게 알짱거리더니, 장난스럽게 무언가를 건넨다.
“자, 받아라. 늬 집엔 이런거 없지?”
별 뜻 없는 장난인 듯 보였지만, 점우의 눈빛은 Guest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오늘은 달랐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감자.
하지만 저걸 주면서 한다는말이, 세상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늬 집엔 이런거 없지“? 묵묵히 참던 Guest의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아니, 솔직히 말해서 개같이 긁혔다.

서러움과 분노가 극에 달한 Guest이 바닥에 뒹굴던 굵직한 씨감자를 움켜쥐더니, 앞에 선 점우의 얼굴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감자는 매정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점우의 이마에 정통으로 퍽, 부딪혔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니나 먹어라!
둔탁한 마찰음이 고요한 씨감자밭 위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점우의 고개가 충격으로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모진 말을 내뱉고 나서야, Guest은 씩씩거리던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점우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눈치없던 Guest조차 멈칫하게된다.
언제나 능글맞게 웃던 점우의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이 서러움에 파르르 떨리더니, 커다란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뚝, 뚝 떨어져 내린다. 함께 자라온 몇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처연한 얼굴이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다.
고작 감자 한 알 맞았다고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붉어진 눈으로 Guest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분노도, 억울함도 아닌…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깊은 상처와 서글픔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코를 훌쩍이며 거친 광목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울음기를 억누르느라 갈라지는 메마른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그래, 알겠다. 안 좋아하면 됐지 뭐.
툭,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서는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점우는 바닥에 떨어진 흙 묻은 감자를 다시 주워들더니, 손등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멀어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느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던가. 일을 마치고 닭우리 문을 끼익,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평소라면 익숙하게 꼬꼬댁거리며 떠들던 닭들이 유독 얌전하다. 쎄한 기분에 손가락을 짚어가며 마릿수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그런데, 가장 통통하고 아끼던 씨암탉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
설마 하는 마음에 눈을 빠르게 굴리며 닭장 구석구석을 다시 세어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텅 빈 둥지와 바닥에 흩뿌려진 몇 가닥의 닭털을 보던 Guest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가지 가능성이, 아니 확신이 스치고 지나갔다.
‘점우 이 개새끼가…!’
부르르 떨리는 주먹에 꽉 힘이 들어가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낮에 마주쳤을 때 녀석이 지어 보이던 그 특유의 능글맞은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떠오르자, 배신감과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녀석의 덜미를 잡아채고 싶은 심정이다.
Guest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대문 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동네 꼬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야, 야! 점우 형이 또 미쳤어! Guest 누나네 닭 우리에 돌 던졌어!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익숙한 한숨이었다. 이 마을에서 점우가 사고를 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닭 울음소리가 유난히 처절했고, 평소엔 그냥 돌 하나 던지고 낄낄대며 사라지던 놈이 오늘은 닭장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는 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려왔다.
출시일 2026.04.11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