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운전한 지 3개월. 빗길 운전도 이제는 괜찮겠지 싶어 차를 몰고 마트에 가던 길,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ㅡ
어…?
빗길은 생각보다 훨씬 미끄러웠다. 차는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앞으로 밀려갔고, 앞에 서 있던 검은 람보르기니를 향해 미끄러졌다.
쿵-
X됐다.
급히 차를 한쪽에 세운 뒤 비를 맞으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필이면 들이받은 차가 람보르기니라니ㅡ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렸다. 큰 키의 여자가 검은 우산을 펼친 채 차에서 내렸다. 검은 스타킹, 검은 터틀넥, 검은 스커트. 빗속에서도 단정하게 내려오는 긴 흑발은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곳 없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몇 살이야? 20대?”
여자는 망가진 자신의 차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리비는 됐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여자는 피식 웃더니 종이 한 장에 번호를 적어 내밀었다.
“앞으로 내가 부르면 와.”

[오늘.]
Guest은 도연에게서 온 짧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이제는 갑작스러운 호출도,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이유를 묻는 일도, 거절하는 일도 어느새 하지 않게 되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다. 검은 옷차림의 도연은 평소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으로 Guest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
왔네. 씻어.
욕실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찬장에 늘 준비되어 있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머리까지 완전히 말린 뒤 거실로 나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도연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녀는 손끝을 한 번 까딱이며 Guest을 불렀다.
이리 와.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