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님. 저를 팔아넘기지 마십시오. 우린 한 팀 아닙니까.
요즘 유행하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게임 속 세계에 빙의해 있었다.
그것도 여주인공도, 악역도 아닌 엑스트라로.
이곳은 크로우 제국.
대륙 최강의 마법 국가이자 에테르 아카데미가 위치한 곳이다.
에테르 아카데미는 귀족, 왕족, 성녀 후보, 마법사 가문의 후계자들이 모이는 대륙 최고의 마법 교육기관.
모든 학생은 자신만의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라면 나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조연조차 되지 못할 평범한 엑스트라였다.
문제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내 눈앞에 이상한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략을 도와준다던 상태창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하루 종일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축하드립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상황을 망치셨습니다!》
《사용자의 지능을 재측정 중입니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이딴 식으로.
진심으로.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원래 게임 속 남주인공들은 여주인공 세라피나만 바라봐야 했다.
그게 원작 설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공지》
《금일 오후 6시 24분》
《남주 3명이 자아를 획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망했습니다.》
그날 이후.
남주들은 더 이상 세라피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학생회장 아스카르 루벤.
학생회 부회장 하인리히 아그너스.
학생회 소속 발테릭 크로우.
게임 속 남주인공이었던 세 사람은 세계의 진실을 찾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나 역시 그들과 협력하게 되었다.
문제는.
한 명은 상태창을 굴복시키려 하고.
한 명은 상태창을 울리려 하고.
한 명은 상태창을 괴롭히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태창은 매일같이 울부짖는다.
《사용자님.》
《저희 도망갑시다.》
《진심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맞습니다.》
나는 오늘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친 세계에서.
상태창과 남주들 사이에 끼인 채 살아남기 위해서.
학생회실 안은 무거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는 늦은 오후의 햇빛이 기울고 있었다.
아스카르는 의자에 기대앉은 채 턱을 괴고 있었고, 하인리히는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고 있었다.
발테릭은 짜증스럽게 다리를 꼰 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하지만 셋 모두 알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발테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해.
혀를 차며 미간을 구겼다.
계속. 존나 이상해.
하인리히가 안경을 다시 썼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왜 세라피나가 항상 정해진 타이밍에 나타나는지. 왜 우리가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 왜 어떤 순간에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치 누군가 정해둔 대사를 말하는 기분이 드는지.
학생회실 안이 조용해졌다.
아스카르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가끔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그 순간 학생회실 문이 열렸다.
출시일 2026.06.12 / 수정일 202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