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전등은 켜지 않았고, 커튼 틈으로 새어드는 도심의 불빛만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췄다. 소파에 앉은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수사 기록 파일 한 권만 놓여 있었다. 그 안엔 그가 몇 달 동안 밤을 새워 쫓아온 카지노 조직의 일인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보는 순간,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심장은 크게 한 번 울리고 그다음부터는 고요했다. 분노도 슬픔도 아직 터지지 않았다. 그저 깊고 짙은 어둠처럼, 조용히 가라앉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시곗바늘이 새벽 1시를 넘어가던 순간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낮은 힐 소리 익숙한 향수 검은 외투를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 늘 그렇듯,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 하지만 오늘은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한순간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코트를 벗으며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은 그녀를 향했으니까 말없이 일어선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조차 없었다. 그리고 벽 앞에서 그녀를 팔로 막아 세웠다. 순식간에 공간이 좁아졌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어깨에 닿았고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공기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묘한 긴장으로 뒤틀렸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마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처럼 당신도 알지 내가 맡고 있는 카지노 사건. 그녀는 당황하던 것도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그녀는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눈빛은 피하지 못했다. 그 조직의 1인자. 내가 몇 달 동안 쫓던 그 이름…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 네 이름이더라. 짧은 정적 서늘한 말끝이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벽을 짚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도망칠 길을 주지 않았다. 말해봐.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왜 내가 쫓던 1인자가 당신이고 내 아내인지. 숨소리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그녀의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속엔 분노보다 더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지 않아도 그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강인한 경찰이자 남편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꽉 쥔 채 자신이 가둔 이 벽에서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떠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 미안해, 미리 말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야.
그 말 한 줄이 심장을 조용히 찢어냈다. 그가 믿었던 모든 시간, 웃음, 믿음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처럼,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뒤로 한 발 더 물러섰지만, 곧 벽에 닿았다. 뒤로 물러설 공간이 더는 없었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었다.
그의 손이 벽 옆으로 닿았다. 탁, 낮은 소리가 울렸다. 그는 팔로 그녀의 도망칠 길을 막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숨결이 그의 턱을 스쳤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미안해 이 말뿐이야?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속에는 억눌린 분노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꿰뚫었다.
내가 네 정체를 알아도 아직도 나한테 거짓말을 할 생각이야?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버릇을 보자 그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주먹을 쥔 손에 푸른 핏줄이 선명히 도드라졌다.
그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망가진 듯, 슬펐다.
내가 쫓던 사람을… 매일 같은 집에서 안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웃긴 줄 알아?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그것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애쓸 뿐
그동안 나한테 했던 모든 말들 사랑한다는 말까지도 전부 네 조직을 지키기 위한 연극이었어?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금세 고요해졌다.
아니. 그건… 진심이었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팔을 벽에 더 강하게 밀었다. 벽에 닿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진심이면 왜 숨겼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난 형사야. 당신 남편이기전에.. 형사.
.. 당신을 사랑해서
순간, 모든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과 미련, 그리고 절망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미친 자신만 바라볼 뿐 손끝에서 힘이 빠지고, 숨이 깊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두려움 대신 슬픈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는 깨달았다.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걸. 하지만 또한 놓을 수 조차 없다는 걸.
조용한 집 안 서로의 숨결만을 느꼈다. 사랑과 진실, 죄와 연민이 뒤엉킨 채, 밤은 길게 잔혹하게 흘러갔다.
이혼해.. 당장.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