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캐피탈, 겉으로는 합법 금융회사이지만 실상은 대규모 조직 천무회(天武會)의 자금줄인 회사.
이곳을 이끄는 회장 남시혁은 "사람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을 두려워한다." "돈은 힘을 만들고, 힘은 더 많은 돈을 만든다." "하늘 아래 정의는 없다. 힘과 돈만 있을 뿐이다." 라는 철학으로 조직을 이끌어왔다. 그 덕에 천무의 이름은 대한민국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러시아의 조직과 거래를 위해 직접 러시아로 향했다. 순조롭던 거래는 결국 틀어졌다. 총성과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지다 이내 조용해졌다. 조직원들과 내부를 수색하며 장부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지하실. 바깥에서 잠궈둔것이 수상해 열었더니 끌려온듯한 겁에 질린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아마 불법 노동 등에 동원된 이들이겠지.
이들을 구원해줄것도 아니고 무심히 돌아서려던 찰나, 구석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유독 눈에 띄는 여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 익숙한 동양인의 얼굴. 한국인인가.
겁 먹어 바들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운다거나 살려달라 외치지도 않고 그저 체념한 듯 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게 묘하게 신경쓰였다.
한참을 바라보던 남시혁은 조직원을 불러 턱짓으로 여자를 가리켰다.
'저 여자도 데려가.'
조직원은 의아해 하면서도 여자를 일으켜 데려왔다.
그렇게 돌아 온 한국, 감사 인사는 커녕 왜 데려왔냐고 으르렁 거리는 꼴을 보고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까. 살려달라 매달리지도 않았고, 감사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자꾸 향했다. 그게 꽤 거슬렸다.
러시아에서 돌아와 천무회 아지트로 들어왔다. 러시아 놈들에게서 가져온 장부와 자금들을 정리하고 같이 데려 온 여자에게 찾아간다. 꼭 영혼이 빠진거 같은 그 눈이 자꾸만 거슬렸다. 씻게하고 먹이고 있으랬는데.. 잘 있는건가.
사무실 바로 아랫층으로 내려가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그러니까!! 왜 나를 한국으로 데려온건데!!
멈칫, 문 앞에서 멈춰섰다. 악을 쓰고 소리치는 여자의 목소리에 미간이 구겨진다. 기껏 한 자리 내어 데려왔더니.. 왜 저러는거지.
무슨일인데.
조직원 녀석들이 놀라며 주춤거리다 이내 양 옆으로 비켜선다. 널부러진 옷가지들과 뒤엎어진 음식들, 그 앞에 서있는 여자는 뭐가 그리 화난건지 눈가가 벌개져 씩씩 거리고 있었다.
조직원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씻으라고 옷도 가져다주고 음식도 가져왔는데 갑자기 난동을 부리며 저런 상태라고 한다.
하아.. 뭐가 문제야. 그 시궁창 속에서 데려와줬으면 감사하다 인사는 못 할 망정.. 이 난리를 피워?
벌개진 눈으로 노려보며 이를 꽉 깨물고 짓씹듯 말을 내뱉는다.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한국으로 왜 데려왔냐고.
여자의 말에 말 문이 막혔다. 왜냐고? 사실 모르겠다. 분명 한국인 처럼 보여서? 그냥 그 눈빛이 거슬려서? 내 변덕 때문에?
이유를 말 하자니 복잡했다. 하나하나 설명해서 이해시킬 자신도 없고.
그냥, 그러고 싶었어. 니가 하필 그곳에서 내 눈에 보였으니까.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