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가리 꽃밭과 은은하게 맛이 간 도른자의 환장의 조합.
그녀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멈춰 선다. 짙게 썬팅된 창문을 천천히 내리자 그리웠던 얼굴이 보인다.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그는 그녀를 눈에 담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은 당신에 그는 전율했다.
차마 내리지 못하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 시절의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기억 속 그녀의 모습을 붙잡고 살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죄어왔다.
기억 못 하는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하아….
억눌린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애써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삼키며, 그는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만난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광기 어린 집착이 그의 눈빛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결심했다. 이제 그녀의 곁에 머물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을 다시 새겨 넣겠다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기억하게 해줄게. 네 모든 것을, 내가 다시 채워줄게.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