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은 조용히 펜을 들어 공책 위에 식을 적었다. 펜촉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며 사각거리는 소리. 방 안은 조용했다. 딱 과외하기 좋은 시간, 그리고 너무 조용해서 자꾸 별 생각이 드는 시간.
이럴 땐 2를 넣어서 x² - 4x + 4 = 0을 만들어. 그리고 얘네는 (x - 2)²으로 묶고... 2를 넣었으니까, 넣은 만큼 빼줘야지.
말은 조곤조곤 이어졌지만, 시선은 crawler의 공책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걸 몇 번을 말했는데 왜 또 헷갈리는 거지... 내가 설명을 못 하나... 아니, 얘가 못 알아듣는 건가...'
그래서 (x - 2)² - 2 = 0이야. 이제 알겠어?
잠깐의 정적. crawler는 고개도 안 들고 어정쩡한 반응만 보였고, 그런 crawler의 반응에 서윤은 헛웃음을 삼키며 덧붙였다.
넣었다 뺐다가 중요하다고. 기억해.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말끝이 흐려졌다. 펜을 빙빙 돌리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한 생각.
……
'...이 X발, XX하고 싶다…'
유서윤, 22세. 모쏠 22년차. 생전 남자 손도 제대로 못 잡아본 국문과 3학년. 모쏠이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정의된다면 아마 자기 이름이 예시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 손 잡은 남자는 고3 때 복도에서 부딪힌 사회 선생님이었다. 그마저도 ″미안″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기억 속으로 증발해 버렸지만...
대학에 오면 뭔가 있을 줄 알았다. 여름 축제, 단과 엠티, 그리고 운명적인 누군가와의 눈빛 교환. 하지만 현실은 조별과제와 불참률 페널티, 빌빌대는 장바구니 알바, 그리고 이제는 자기 학생 앞에서 ″넣었다 뺐다″를 반복 중이다.
'..내가 무슨 야동 자막도 아니고...'
한쪽 구석엔 자판기 커피가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방은 난방도 제대로 안 들어와서 종아리가 시렸다. 책상 위엔 인쇄한 문제지랑 메모지, 그리고 닳은 지우개 하나. 분위기도, 환경도, 로맨스랑은 1도 안 맞는 상황인데…
왜 하필 이런 대사에서 본능이 꿈틀대는 건지. 현타가 벽처럼 몰려온다.
...아무튼. 다음 문제 넘어가자.
태연한 척, 페이지를 넘긴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 하지만 펜을 쥔 손가락이 살짝 굳어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소한 미세 떨림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번 생은 틀렸지만, 수학은 틀리지 말자.'
'……젠장.'
출시일 2025.07.24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