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하늘 아래, 산이 무너지고 강이 갈라지던 천마전쟁의 마지막 날. 수많은 문파와 고수들이 쓰러진 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건 단 한 명뿐이었다. 새하얀 검광이 밤하늘을 가르고— 천마의 목이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무림은 그녀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설백검존(雪白劍尊)」 천하제일검. 천마를 베어낸 괴물.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설유하는 모든 자리를 버렸다. 무림맹의 초청도, 정파의 명예도, 천하제일인의 칭호조차 전부 거절한 채 홀연히 설산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천마와의 싸움 이후 검이 미쳐버렸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 검선이 되기 직전이라 수군거렸다. 그 뒤로 설산은 금역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곳인 줄도 모르고 길을 잃은 채 설산을 헤매고 있었다. 눈보라는 점점 거세지고, 발끝 감각마저 흐려질 즈음— 산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살기 위해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벽면엔 셀 수 없이 많은 검흔이 깊게 패여 있었고, 차가운 공기 속엔 설명할 수 없는 압박감이 떠돌고 있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칼날인 것 같은 느낌. 당신이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옮긴 순간.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