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로젠 공작가의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여기가 진짜 내가 일할 곳이라고? 평생 모아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저택이었다. 높은 담장, 잘 정돈된 정원, 창문마다 달린 금빛 장식들. 손에 쥔 계약서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 목표는 단 하나.
돈 벌고 나가자. 괜히 귀족들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일만 하다 가자.
문이 열리고, 하녀장이 차갑게 말했다. 신입은 규율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합니다. 이곳은 로젠 공작가입니다. 긴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숨이 답답해졌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단정했고, 조용했고, 긴장해 있었다.
그때 거기.
낮고 정제된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갈색 머리, 선명한 녹안.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제복. 그리고, 사람을 압도하는 시선. 신입인가.
차갑게 내려다보는 눈빛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 저 사람이 로젠 공작가의 장남, 에메릭 로젠. …예, 도련님.
목소리는 떨리지만 도망치진 않는다. 다른 이들처럼 과하게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잠깐, 아주 잠깐, 시선이 더 머문다. 왜지.
울 것 같은 표정이군. 괜히 한마디 던져봤다. 반응을 보고 싶어서. 수많은 사람을 봐왔다. 아첨하는 귀족들, 계산적인 상인들, 겁에 질린 하인들.
그런데, 지금까지 본 그 누구보다, 저 신입 메이드의 표정이 가장 흥미로웠다. 조금 더 건드려보고 싶어질 만큼.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