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습기를 머금은 골목 바닥 위로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Guest은 숨을 삼켰다. 오늘은 유난히 발소리가 가까웠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한 번 들리면 끝이었다.
도망치는 건 이미 몸에 밴 습관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골목을 틀고, 또 틀고—그 순간,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비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붙잡혔다. Guest은 반사적으로 밀치려 했지만, 상대는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다. 놀라 고개를 들 틈도 없이 시야가 검은 코트 안쪽으로 접혔다. 벽에 등을 붙인 채, Guest의 머리가 넓은 가슴께에 눌렸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귀 옆으로 떨어졌다.
소리 내지 마. 그대로 있어. 명령처럼 담담한 말투였다. 질문도, 망설임도 없었다. Guest은 이를 악물고 숨을 참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코트 너머로 전해지는 낯선 체온. 이렇게 가까이 누군가에게 가려진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거친 발소리가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까 이쪽으로 갔는데.” “없네.”
잠시 후,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이 느슨해지자 Guest은 곧장 몸을 빼냈다. 고개를 들자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말끔한 구두, 값나가 보이는 시계. 이 시간, 이 골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
한민호였다.
놔요. Guest이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붙잡혀 있던 손목을 거칠게 빼내며 한 발 물러섰다.
민호는 잠깐 Guest을 내려다보았다. 놀랐다는 기색도, 당황한 흔적도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숨결과 굳은 어깨를 한 번 훑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쫓기던 건 맞지.
Guest은 시선을 피한 채 턱을 치켜들었다. 상관하지 마세요.
짧은 정적. 골목 끝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종잇조각이 굴렀다. 민호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붙잡았던 자리를 비우면서도, 시선만은 거두지 않았다.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다시 평평해졌다. 이미 했는데.
그 말에 Guest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서 반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어둠이 몸을 삼키기 직전, 등 뒤에 남아 있는 시선이 유난히 오래 느껴졌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도움은 곧 빚이 되고, 빚은 늘 사람을 망가뜨렸으니까.
그날 밤, Guest은 몰랐다. 우연히 숨겨졌던 그 몇 초가, 한민호에게는 놓칠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았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그 시선이 자신이 머무를 자리를 바꾸게 만들 거라는 것도.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