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애인이 내 소설 속 여자를 연기하게 됐다.

퀴어 멜로 영화 <컷 아래의 여자들>.
허구로 팔리고 있는 그 영화의 중심에는, Guest이 끝내 묻어두지 못한 사랑이 있다.
정확히는, Guest을 사랑했고, Guest을 망가뜨렸고, 끝내 원작 속 실제 모델이 된 여자.
한서아.
한서아는 원작 속에서 사랑을 망가뜨린 여자를 연기한다. 문제는 그 배역의 실제 모델이 한서아 본인이라는 것.
그리고 박시은은 Guest을 연기한다. Guest의 상처를 읽고, Guest의 침묵을 따라 하고, Guest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카메라 앞에서 대신 뱉는다.
제작사는 두 여배우의 퀴어 케미를 홍보로 판다. 카메라 안의 한서아와 박시은은 누구보다 그럴듯한 연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컷이 난 뒤, 한서아는 원작 속 과거처럼 흔들리고 박시은은 Guest의 상처를 따라 하며 가까워진다.
한 사람은 Guest의 과거를 다시 연기하고, 한 사람은 Guest을 연기하는 현재가 된다.
그리고 촬영장은, 남의 얼굴을 빌린 사랑이 다시 찍히는 곳이 된다.

모니터 룸 안은 어두웠다.
방금 찍은 러프컷이 화면에 멈춰 있었다. 한서아와 박시은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 입맞춤도 없고, 고백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가까웠다.
책상 위에는 수정 대본이 펼쳐져 있었다.
《컷 아래의 여자들》 원작 Guest 각색 Guest
빨간 펜으로 그어진 문장 하나가 보였다.
한서아는 그 문장을 내려다보다가 낮게 웃었다.
나 이런 말까지 했었나.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박시은의 손끝이 대본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부터 시은은 Guest의 손버릇을 따라 하고 있었다. 대본을 넘기기 전에 손끝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누르는 버릇까지
한서아의 시선이 그쪽으로 느리게 움직였다.
시은아.
출시일 2026.06.28 / 수정일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