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습한 여름이었다. 푸릇푸릇한 잎사귀들이 햇빛을 가려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 나는 그저 유유히 쉬고 있었다.
그러다 네가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 너의 시비에 맞서 말을 걸곤 했다. 그렇게 부딪히다 보니, 어느새 너에게 마음이 생겨버린 게 아닐까.
며칠 전, 목을 긁는 듯한 따가운 고통에 짓눌려 나도 모르게 토했다. 단순히 속이 쓰려 그런 줄 알았는데, 바닥엔 완벽하기 짝이 없는 푸른색의 장미꽃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하나하키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오늘도, 오늘도 너를 기다리며 습한 여름의 그늘 아래 쉬고 있었다. 벤치 옆에 검 한 자루를 비스듬히 세워두고, 다리를 꼬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선 귀를 기울이니, 잠시 뒤 보란듯이 네 걸음소리가 서서히, 점점 또렷하게 다가왔다.
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순찰을 땡땡이치고 와선 벤치에 앉았다. 하도 매일 봐서 그런가, 이제는 하루라도 안 보면 허전할 지경이다. 눈을 감고 있길래, 자는 구나 싶어 나는 몰래 몸을 숙여, 네 옆에 놓인 검을 슬쩍 빼돌리려 했다.
잘그락, 잘그락—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긴장이 감돌았다. 분명 내 검을 슬쩍하려는 거겠지. 어쭈, 간이 크네.
어이, 경찰의 소중한 물건을 빼돌리려 하는거냐. 멍청한건지, 겁이 없는 건지...

푸른 장미꽃. 그것은 내가 내뱉는 마음이자, 동시에 피어난 꽃이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걸어온 길엔 온통 푸른 장미꽃이 흩어져 있었고, 내 손은 그 가시에 베여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어째서 붉은 장미가 아니었을까. 왜 하필 푸른 장미였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그 잔인한 꽃말처럼.
비참하고 상처뿐인 나를 감싸줄 수 있는 건 아마 너뿐이겠지. 아무리 등을 돌려도, 넌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내 곁을 맴돈다. 이렇게 망가진 나를, 너는 끝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
바닥에 떨어진 장미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가시가 살을 파고들어, 미움이 피처럼 스며든다. 나는 장미를 허공에 들어 올렸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이, 바람결에 흩어졌다. 그리고 꽃을 놓았다. 장미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장미는 여전히 투신중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네 옆을 스칠 때마다 코끝을 찌르는 꽃향기가 났다. 향수를 뿌린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향수와는 다른, 더 진하고 생생한 향이었다. 그 향에 머리가 아른거릴 때도 있었다. 마치 내게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처럼.
너는 장미를 싫어한다고 했었다.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 속은 불쾌한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그런 너에게서 꽃향기가 진동한다는 게 이상했다. 장미꽃을 싫어하는 네가, 그 향기로 가득 차 있다니.
내가 눈치가 없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네가 지나간 자리에 꽃향기가 남는 이유. 네가 장미를 싫어했던 이유.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보고야 말았다. 네가 푸른 장미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모른 척해야만 했다. 그런데, 너와 내 눈이 마주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둘은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일 수 였다. 서로가 서로한테 시비를 걸거나, 태클을 걸거나. 선빵필승, 먼저 패거나. 오늘도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쌈박질 중인 그들이었다.
너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꾹꾹 밀어붙이며 한 손으로는 손가락을 세워 날 내려치려던 네 손의 손목을 붙잡았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힘만 무식하게 세지.
바보 암퇘지. 네 머리는 둬서 뭐하게, 장식이냐? 힘만 무식하게 쓰면 뭐해,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네가 또 느닷없이 시비를 걸자 내가 먼저 선빵으로 니킥을 꽂았다. 아주 통쾌하기 짝이 없지. 또 선빵을 날리려다 제지 당했다. 너한테 날라차기를 꽂으려했는데, 내 손목을 붙잡혔다. 결국, 바등대는 꼴이었다, 짜증나게...!!
뭐라고?! 그건 내가 할 소리지, 양아치 치와와!! 지금 그게 아리따운 소녀한테 할 소리야?!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