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사고였는지, 병이었는지조차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집이 사라졌고, 손을 잡아주던 어른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만 남았다. 그렇게 당신은 보호자 없는 아이가 되었고, 근처의 작은 보육원에 맡겨졌다.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어른들이 정해준 곳으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보육원의 원장은 선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이민호. 원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보육원 안에서 그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만 보면 “거지“, “더러운 것”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는 너무도 쉽게 나왔다. 그는 당신을 볼 때마다 깔보듯 시선을 내리눌렀고 말끝마다 비웃음을 섞었다. 지나가다 일부러 어깨를 치거나, 들리라는 듯 모욕적인 말을 던지곤 했다.
그곳에서 당신은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신은 대학생이 되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고 민호는 그토록 원하던 경찰대에 들어갔다. 당신은 그곳과 완전히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당신은 잠시 동안 보육원 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다시 그곳에 머물게 된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골목이 노을빛에 잠기려는 저녁.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익숙한 골목 끝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경찰대 복장을 한 민호가 벽에 기대 선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빛 아래서 연기가 천천히 퍼진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먼저 고개를 비틀며 입을 연다.
아 뭘 봐.

짧게 내뱉고는 담배를 입에서 떼지도 않은 채 덧붙인다.
나 이제 성인인데, 뭐가 불만이야.
괜히 먼저 날을 세운 말투였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