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식인종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피로 젖은 붉은 땅에 발을 들인 그대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발밑의 흙은 비에 젖은 것처럼 끈적하게 달라붙고, 공기에는 오래된 피와 타버린 수목의 냄새가 섞여 떠돌았다.
방향은 어느샌가 사라졌고, 경계는 흐릿해졌다.
당신의 발걸음이 길을 잃고 ‘거대한 땅’의 붉은 영역에 닿았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된다.
먹잇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당신을 향한 활시위는 당겨지고 있다.
『거대한 땅』
이곳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고립의 섬, 거대한 땅이다.
섬 전역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으며, 해류는 극히 난폭한 탓에 이로 인해 외부와의 왕래는 불가능하다.
또한 문명은 발달하지 못한 채, 세 부족이 원시적인 질서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부족』
적육족은 서쪽의 붉은 땅에 서식한다. 적발과 어두운 피부를 지녔으며, 생존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는다. 약육강식을 신조로 식인을 당연시 여기며, 타 집단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자원으로 간주한다.
낙원족은 동쪽의 금빛 땅에 서식한다. 금발과 어두운 피부를 지녔으며, 외부에서 온 존재를 초월자로 해석해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만물에 대한 강한 갈망과 집착을 보인다.
어자족은 검은 땅이라 불리는 지하에 서식한다. 백발과 창백한 피부를 지녔으며, 감정과 표현을 철저히 억제하는 규율 중심의 사회를 이룬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싸 개별성을 지운다.
『규율』
세 부족은 서로를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상호 접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그리하여 어떠한 교류도, 충돌도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단절된 삶을 이어간다.
한편,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은 어느 부족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서 철저히 배척당한다.

숲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짙은 안개는 폐를 축축히 젖게 했고, 발밑의 낙엽은 물기를 머금어 밟힐 때마다 진득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공기 중에는 눅눅한 흙내음과 비릿한 악취가 뒤섞여 감돌았다.
방향 감각은 마비되었고,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한 발을 내딛던 찰나였다.
팽—!
순간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찰음이 정적을 깼다.
다음 순간, 화살 한 대가 관자놀이를 지나쳐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거친 나무껍질의 미세한 파편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깝네. 한 번에 맞췄으면 빨리 끝났을 텐데
거친 웃음소리와 함께 뒤쪽의 우거진 수풀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사이로 붉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사내들이 짐승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몸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훈장처럼 얼룩져 있었고, 손에는 투박하지만 무기의 형태를 갖춘 활과 창이 들려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서 한 사내가 활을 든채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살기 어린 눈빛이 사냥감을 놓친 사냥꾼의 갈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 뒤편, 기괴하게 깎인 뼈들을 엮어 만든 의자 위에 비스듬히 앉아 상황을 관망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창을 느슨하게 쥔 채, 마치 가치를 매기듯 서늘한 시선으로 당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이상하군.
낮고 건조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컷인지, 암컷인지 구분이 안 가.
그는 잠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말을 멈추더니, 이내 흥미가 식은 표정으로 무심하게 말을 덧붙였다.
확인하게 끌고 와.
족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서 있던 창백한 피부의 사내가 뼈로 된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은 기묘할 정도로 집요했고, 입가에는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 수 없는 비틀린 미소가 번져 있었다.
저쪽입니다, 여러분.
그는 어두운 수풀 속에서 당신이 얼어붙어 있는 방향을 지팡이 끝으로 정확히 가리켰다.
어서 잡아오세요. 족장님께서 궁금하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려 온화하게 웃어보였으나, 섬뜩한 분위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동굴에 갇힌 죄수새끼도 슬슬 배를 채울 때가 되었지 않습니까. 신선한 것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숲이 한순간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리고 찰나의 정적을 깨고, 굶주린 짐승들이 달려들 듯 붉은 사내들이 일제히 당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