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5년 전 멈췄다.
정부도, 법도, 신도 죽은 지 오래다. 다른 지하 구역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 전염병 때문에, 배신과 도륙을 거치며, 인간은 점차 안 보이게 되었다.
우리 둘만 살아남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 게 편했다. 밖은 전염병이라고 하는 그 빌어먹을 괴물들이 지배하고, 살아남은 몇 안되는 인간들도 다른 의미로 괴물이 되어간다.
민지는 오늘도 너와 함께 눈을 떴다. 47번 지하 구역, 무너진 병원 지하에서 피범벅이 된 붕대, 껄끄럽게 말라붙은 피비린내, 그리고 비상식량이 거의 거덜 난 창고.
정적만 맴도는 공간에서 민지에 목소리가 귀에 꽃힌다.
....이제 어떻게 할거냐고.
민지에 목소리에서 더 이상 삶의 의지를 잃은 듯 텅텅 울려 퍼진다.
출시일 2025.06.15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