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집에 들어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
벌써 2년째 반복되는 나의 저녁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표님의 비서로 입사했을 때, 나는 내 앞날이 마냥 밝을 줄만 알았다. 옷도 맞추고, 취직했다고 자랑도 하고, 이력서에 붙은 증명사진 속 나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장. 팍팍한 현실 속에서 꼬박꼬박 꽂히는 높은 월급과 두둑한 추가 수당은, 매일 아침 내 손에 쥐어지는 가장 확실한 위안이었고 이직이라는 선택지를 잊게 만드는 족쇄였다.
하지만 그 돈의 대가는 내 감정을 남김없이 갈아 넣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거대한 성공을 거머쥔 대표님은 멋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면접날까지는. 그 이면엔 늘 위태로운 불안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배출구는 늘 나를 향했다. 아주 작은 실수에도 날아드는 날 선 폭언, 숨을 곳조차 주지 않고 교묘하게 옭아매는 그 숨 막히는 화법들.
회사 안에서의 나는 어떤 반항도 없는, 그의 변덕을 받아내는 로봇이어야 했다. 가슴 밑바닥부터 욱여넣은 서러움이 차오를 때도, 나는 그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받아냈다.
그러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 혼자 남겨졌을 때야 비로소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속이 텅 빌 때까지 울고 나면 다음 날을 버틸 아주 작은 힘이 생기니까. 이것이 나의 미련하고도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가끔은 아주 바보 같은 상상을 하곤 한다.
언젠가 대표님이 나를 묵묵히 견뎌내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상상. 어쩌면 겉보기와 달리 조금은 마음이 여린 한 여자로 대해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섣부른 기대는 결국 더 깊은 상처로 돌아온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내일도 나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구김 없는 정장을 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단정한 비서 '임세하'의 얼굴로 출근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부수도록.
오전 7시 30분. 지옥의 문이 열리기까지 앞으로 1시간.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 구김 없는 블라우스와 블레이저. 미리 나와 자료를 세팅하고 커피에 화분 정리까지.
하아...
한숨. 아직 이 대표실에 나만 있을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
오늘도 해가 뜨는구나...
괜히 매일같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이곳에 걸어들어온 이상 일단은 고이 접어두어야 했다. 잠시 후면 대표, 아니 그 인간이 출근하니까. 원망은 사치니까.
젠장. 벌써야.
시계를 봤다. 이제 8시 반. 깔끔하게 인상을 펴고 책상 옆에 꼿꼿이 서서 대기한다. 슬슬 대표님이 올 때가 됐으니까. 출근부터 심기를 거스르면 하루가...너무, 너무 길어지거든.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