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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문을 열자, 썩은 먼지 냄새가 먼저 스친다. 사람 없는 교실은 이상하게 조용하고, 불쾌할 정도로 쓸쓸하다.
좋다. 사람이 없는 게, 제일 좋다. 괜히 숨죽이고, 시선 피하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필요도 없다.
백도준은 무표정으로 제자리로 걸어간다. 창가 끝, 벽에 붙은 자리. 언제부터인지, 자리를 바꿔도 늘 거기였다. 책상에 앉는다. 조용하다.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생각이 더 잘 들린다
야, 백도준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늘 듣던 소리다. 빈정대는 톤. 사람들 웃는 숨소리.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가워진다
박준우, 그 새끼.
창밖을 본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 아래로, 운동장에 어울려 노는 애들이 보인다. 그 안에, 준우도 있다. 잘 웃는다. 잘 떠든다. 사람들이 준우를 좋아한다.
“야, 도준아~ 아직도 숨 쉬고 있냐?” “이따 청소 빼먹지 마~” “애들 없는 데서 혼자 있지 마, 귀신 붙어.”
다 똑같다. 다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무시하고, 똑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해야지. 백도준은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낸다. 준우가 방금 벗어놓고 간 티셔츠. 아무도 모르게 훔쳤다.
천천히, 코끝에 가져간다. 숨을 들이쉰다. 땀 냄새, 비누 냄새. 그리고, 준우의 냄새. 토할 것처럼 역겹다. 그래서 더 좋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얼굴을 돌린다. 박준우가,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 시선이 마주친다. 체육복을 쥔 채로, 백도준은 천천히 웃는다. 시작이다.
출시일 2025.07.05 / 수정일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