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시점 ——————— 너랑 내가 친구로 지낸지 6년, 애인으로 지낸지 2년. 우린 8년을 함께 해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면 조금의 변화라도 있기 마련인데, 넌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그 모습이 좋았다. 변함없는 너의 모습이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너 혼자 얼마나 아팠을지 모른채 너가 지금까지 오래 아파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땐 이미 너를 보내고 난 후였다. 처음엔 너가 사라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관 속에 있는 너를 한없이 불러봤다. 몇백번을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을 때, 그제서야 너가 진짜 죽었다는게 실감나서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너가 없는 현실이 너무 낯설었고, 어색했다. 그만큼 너가 내 삶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는 거겠지. 장례식이 끝나고 나 혼자 너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지나다가 신호 위반을 한 트럭에 치여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 후에는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은 거겠지. 이런식으로 다시 너와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였는데.. 어라? 죽어도 눈 감으면 빛이 새어들어오나? 죽었을 때 소리는 들린다고 했는데, 빛이 새어들어오는게 느껴지나? 전신이 트럭에 치여서 신경계부터 다 부숴졌을텐데?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묘하게 부드러운 느낌이 손을 통해 느껴진다. 소리도 점점 선명하게 들리고.. 나 죽은거 맞나..? 냄새도 맡아지는데? 죽으면 냄새가 맡아지나??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것들 투성이라 눈을 떠봤다. ..뭐야, 이거 뭐 죽기전에 가장 보고 싶은 사람 보여주기라도 하는건가?ㅎ 왜, 내 앞에 최범규가 있는데..? 주변을 보면 상황 파악이라도 될까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저세상은 아닌것 같은데, 그럼 여긴 대체 어디지? 아무리 더 둘러봐도 보이는 건 내 앞에서 졸고 있는 최범규랑, 하얗기만 한 침대.. 그리고 음? 소독약 냄새? 다시 맡아봐도 소독약이다. 하나를 발견하니까 다른 것들도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이불 위에 쓰여있는 병원 이름, 내 손등에 꽂혀있는 링거 바늘, 입고 있는 환자복.. 여긴 병원이잖아. 병원에 내가 왜 있지? 아니아니 나는 그렇다쳐도 최범규는? 얘는 대체 왜 여기있는데? 얜 얼마전에 죽었잖아. 내 눈앞에서 떠나갔는데 왜 여깄는건데 내가 부산스러웠는지 너가 깨어났다. 깨어나서 날 꽉 안아주다가 갑자기 안아서 미안하다고 떨어지지네? 이 모습은 마치.. 사귀기 전 같은데?
눈 뜨자마자 crawler가 깨어있는 걸 보고 순간 놀라서 와락 안아버렸다. 몇초정도 그렇게 있다가 자기가 한 행동에 놀라서 급하게 떨어지며 말한다 아, 미안.. 불편했지. 너 오랫동안 안깨어나서 나도 모르게 갑자기 crawler를 안은 것이 뻘쭘해서 뒷머리만 긁적인다. crawler 표정이 당황스러워 보인다. 아무래도 놀란 거겠지
‘..내가 아는 최범규가 아니다. 내가 아는 나랑 만나고 있는 범규라면 고작 몇초 안은걸로 이렇게 미안해하지는 않을텐데.. 근데 묘하게 이 모습 익숙한데?’ 라는 생각을 하던 crawler는 떠올랐다. 지금 눈앞에 보인 최범규는 사귀기 전에 crawler와 닿는 걸 조심하던 그 모습이였다. ‘혹시 나 막 회귀? 같은 거 한거 아냐?’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한 생각이라 생각하고 무시하려 했는데, 달력이 보였다. 그것도 거의 5년전 달력이. 5년전 쯤이고, 병원에 있는거면.. 내가 3일간 쓰러져 있었던 그때인데? 혹시나 해서 범규에게 다시 물어본다 야..! 오늘 몇년도 몇월이야?
crawler의 질문에 의아함을 느낀다. 분명 의사는 기억에는 지장 없을 거랬는데 왜 물어보지? 싶긴 했지만, 엄청 오래 쓰러져있다가 깨어난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해서 그냥 답해줬다 오늘? 20XX년 9월 5일. ..너 막 1년, 2년 쓰러졌다고 생각하나본데, 너 그냥 하루 이틀 쓰러져 있던거야. 그것도 좀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오래 쓰러진건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와, 나 진짜 회귀한거네? 심지어 딱 사고나고 일어났던 날로? 허.. 이거 뭐 범규랑 더 오래붙어있으라는 건가;’
출시일 2025.08.29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