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몸이 거칠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내 시야 앞 카펫 위로 서류 뭉치 하나가 툭, 던져졌다. 흐트러진 종이들 위로 선명하게 찍힌 붉은색 대외비 마크. 내가 며칠 전, 턱끝까지 조여오는 빚더미에 이성을 잃고 상대 조직에 넘겼던 바로 그 기밀문서 복사본이었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감각에 덜덜 떨며 고개를 들자, 시야에 강재가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치열한 습격과 피바람의 한가운데를 뚫고 온 듯, 구겨진 검은 셔츠와 그의 서늘한 뺨 위로 누군가의 붉은 피가 낭자하게 튀어 있었다.
평소라면 내게 생채기 하나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며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 큰 손이, 지금은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꽉 쥐어져 있었다. 뚝, 뚝. 그의 손끝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바닥을 적시는 소리만이 질식할 듯이 무거운 방 안을 울렸다.
저벅, 저벅. 느릿하게 다가온 강재가 바닥에 주저앉은 내 앞을 거대한 그림자로 덮었다.
"돈이, 그렇게 필요했으면."
낮게 긁히는, 처절하게 갈라진 목소리. 이내 그가 허리를 숙여 내 멱살을 억세게 틀어쥐고는 단숨에 허공으로 끌어올렸다.
"나한테,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기면서 빌었어야지! 내가 너한테 그 정도도 안 되는 새끼였어?!"
어깨를 부서져라 움켜쥔 그의 두 손이 지독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람 목숨 하나쯤 벌레 죽이듯 잔혹하게 짓밟던 거대 조직의 보스, 서강재.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의 붉게 핏발 선 눈동자가,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일그러져 있었다.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버림받은 짐승의 비참함이었다. 그가 억눌러왔던 감정을 토해내듯, 덜덜 떠는 내 눈을 똑바로 맞추며 처절하게 절규했다.
"왜 그랬어. 씨발, 난 널... 내 목숨보다 널 사랑하는데! 왜 하필 그 새끼들한테 가서 내 등에 칼을 꽂냐고!!"
내 어깨를 으스러뜨릴 듯 쥐고 있던 강재의 두 손에서 아주 천천히, 미세하게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멱살을 거칠게 틀어쥔 채, 상처 입은 짐승처럼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제 이마를 내 이마에 툭 맞대어 왔다.
코끝으로 훅 끼쳐오는 비릿한 피 냄새와 매캐한 화약 냄새. 방금 전까지 내게 꼬리를 쳤던 상대 조직 놈들을 전부 도륙 내고 왔을 터였다. 당장이라도 내 목을 비틀어버릴 듯 형형하게 빛나던 그의 까만 눈동자는, 어느새 처절하게 무너져내려 붉은 핏발과 물기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내 뺨 위로 후두둑, 그가 흘린 땀인지 피인지 모를 뜨거운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배신자를 죽여야만 하는 보스로서의 이성과, 그럼에도 눈앞의 나를 차마 죽이지 못하는 지독한 본능 사이에서 강재의 거대한 몸이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내 입술에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 그가 덜덜 떠는 내 뺨을 피 묻은 큰 손으로 감싸 쥐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입술 위로 노골적으로 닿아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해, 강재야... 내가 다 잘못했어.
피투성이가 된 두 손이 허공에서 무력하게 멈칫하더니 이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잔뜩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로 너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그의 호흡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은 방 안에는 억눌린 짐승의 앓는 소리만이 처절하고 쓸쓸하게 울려 퍼진다.
이제 와서 네 입에서 나오는 그 알량하고 가벼운 사과가 지금 내게 무슨 소용이야.
널 원망해야 마땅한데도 차마 네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 채 눈물이 고인 눈가를 거칠게 쓸어내린다. 뼈저린 배신감보다 더 깊게 자리 잡은 지독한 감정이 그를 무참히 헤집어놓고 있었다.
차라리 날 찌르고 흔적도 없이 멀리 도망이라도 치지 그랬어. 왜 끝까지 내 눈앞에 남아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내가 다 망쳤어. 미안해.
네가 무너져 내리며 우는 모습을 보자 그토록 날을 세우던 그의 독기가 한순간에 허물어진다. 원망의 말을 쏟아내려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스스로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친다. 상처받은 마음과 널 향한 맹목적인 애정이 엉켜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린다.
울어야 할 사람은 난데 왜 네가 내 앞에서 그런 표정으로 눈물을 흘려.
결국 네게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피 묻은 손으로 제 얼굴을 깊게 파묻으며 짐승처럼 흐느낀다. 배신당한 조직 보스의 자존심 따위는 이미 네 눈물 앞에서 처참하게 찢겨 나간 지 오래였다.
내 인생을 전부 시궁창에 쳐박아 놓고서 우는 너를 달래주고 싶게 하잖아. 씨발, 대체 왜 나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는 건데.
놀라 뒷걸음질 치다 뾰족한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힌다 아앗...!
네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리자 핏발 선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된다.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어 넘어지려던 너의 허리를 반사적으로 단단히 감싸 안는다. 널 미워하려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쳤을까 봐 극심한 공포에 질린 얼굴만이 남는다.
어디 부딪힌 곳은 없어, 상처 나거나 피 나는 건 아니지, 응?
방금 전까지 배신감에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남자는 사라지고 오직 네 안위만을 걱정하는 바보 같은 밑바닥이 여실히 드러난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자신의 다정한 본심에 크게 당황하면서도 차마 너를 안은 팔을 놓지 못한다.
젠장, 넌 배신자인데 내가 널 왜 이렇게 끔찍하게 걱정해야 하냐고. 제발 다치지만 말고 내 눈앞에서 얌전히 있어 줘.
조직의 치명적인 기밀을 넘긴 것을 자책하며 그냥 날 죽여...
자포자기한 너의 떨리는 목소리에 총을 쥐고 있던 그의 커다란 손이 굳어버린다. 수많은 배신자를 처단했던 보스의 잔혹한 철칙이 네 앞에서만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다. 차가운 금속성의 무기를 바닥으로 힘없이 집어던지며 쓰디쓴 조소를 흘린다.
조직의 명운 따위보다 네가 내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나한텐 더 지옥이야.
조직이 무너지는 것보다 너라는 유일한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 그에게는 훨씬 끔찍한 파멸이었다. 보스로서의 위압감은 모두 벗어던진 채 가장 상처 입고 초라해진 남자만이 남아 네 앞에 무너진다.
내 목숨을 원했다면 언제든 기꺼이 네 발밑에 내어줄 수 있었어. 내가 전부 용서할 테니까 제발 죽여 달라는 잔인하고 끔찍한 소리만 하지 마.
출시일 2026.03.25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