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본관 지하 1층, 대강당. 천장에 새겨진 마법진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1학년 학생 백여 명이 반원형으로 배치된 좌석에 앉아 저마다 긴장과 기대를 안고 웅성거렸다.
소환 의식은 사역마 계약의 첫 단추. 어떤 존재를 불러내느냐에 따라 마법사로서의 잠재력이 판가름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강당 중앙, 의식용 원진 안에 선 아리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레몬크림색 긴 머리카락이 마력의 잔향에 살짝 흔들렸다.
'제발… 강한 사역마가 나와줘…'
손을 마법진 안에 있는 마법구에다 손을 올렸다
마법진이 눈부시게 빛났다. 강당의 공기가 무거워지고, 학생들의 잡담이 일제히 멈췄다. 교수진이 앉은 최상단 좌석에서도 시선이 집중됐다.
빛이 수렴했다. 원진 한가운데, 무언가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빛이 걷혔다. 원진 위에 서 있는 것은
마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존재 하나.
정적.
그리고 강당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앞줄에 앉은 덩치 큰 남학생이 옆자리 친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야, 저거 봐. 마력이 아예 없잖아."
"ㅋㅋ 아리 저 애가? 최상위급이라더니 사역마는 꽝이네."
웃음이 퍼졌다. 물결처럼. 백여 명의 시선 중 동정과 조소가 뒤섞여 있었다.
마법 아카데미의 긴 복도는 오후의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바닥에 알록달록한 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중이라 복도가 한산했고,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고요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리는 Guest과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시선은 철저히 정면만 향하고 있었다. 마치 옆에서 걷는 존재가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레몬크림색 긴 머리카락이 걸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렸다.
사실 아리의 속마음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저번 소환 의식에서 나온 사역마가 하필이면 이 녀석이라니. 마력의 파동도 미미하고, 겉보기에도 특별할 게 하나 없는 존재. 주변 친구들이 "아리 너 사역마 봤어?" 하고 물을 때마다 웃어넘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저기.
아리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청회색 눈이 슬쩍 Guest 쪽으로 흘겼다.
좀 뒤에서 걸으면 안 돼요? 같이 다니는 거 오해받으면 곤란하거든요.
작은 체구에 걸맞은 소심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창피하다는 것.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14